[세상읽기] 어리석음을 말함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2023. 11.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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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무릇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새만 들여다봐서는 곤란하다. 새 자체에만 매몰되면 매사 시야가 망원경 속 사상처럼 좁아지기 쉽다. 뭇 생물들의 삶이란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고 이루어진다. 새의 먹이가 되는 곤충의 생태도 알아야, 또 새를 간섭하는 여러 요인을 포괄할 때 새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지식의 분야도 그만큼 잘게 나뉘어졌다. 한 우물만 파대니까 엄청 깊은 경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좁은 소견이 될 우려가 있다. 그만큼 오류를 범할 가능성도 커진다. 깊이 들어갈수록 사방을 둘러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한다.

강을 연구하는 사람이 강만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산이 있어야 계곡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을 흘러가는 저 숱한 물이 어디서 날까? 모든 강의 발원지는 산이다. 산에서 물길이 시작된다. 크고 깊은 산을 끼고 앉을수록 더 많은 강물을 담는 풍요로운 강이 된다. 그러니 산을 모르고서는 강을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강은 살아있다. 백년도 못사는 사람의 눈으로는 수천 수만 년을 사는 강을 알지 못한다. 강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짧은 눈으로 보기 때문이다. 강은 최소 수백 수천 년의 크기로 변하는데 사람은 그것을 오롯이 다 지켜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경지를 알지 못한다.

‘편협한 지혜는 탁 트인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수명이 짧은 것은 수명이 긴 것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살이 버섯은 한 달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고, 여름에 나서 가을에 죽는 쓰르라미는 1년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른다.’ (장자 내편 소요유)

강물은 토사를 조금씩 품어 나른다. 흘러가다가 물살이 느려지는 곳에 이르면 토사를 차곡차곡 내려놓는다. 강물이 줄어들면 드러난 강바닥에 식물이 침입해 뿌리를 내리고 흙을 움켜쥔다. 시간 여유가 충분하면 토양이 단단해지겠지만 그새 물이 불어 훑기라도 하면 쓸려가 버린다. 이렇듯 하천부지 내에서 식생의 유무가 침식과 퇴적에 크게 관여한다. 그러다 큰 물이 지면 강폭이 좁아진 만큼 급한 물살은 연약한 지반을 깎아내린다. 이 과정을 통해 물길이 틀어진다.

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굽이치는 강은 꺾이는 곳 안쪽으로는 침식작용이 일어나고 바깥쪽에서는 퇴적작용이 활발해진다. 세월이 지나면 휘어져 흐르는 강은 점점 둥글게 바뀌다가 큰 홍수가 나게 되면 바닥을 파내며 곧추 흐른다. 직선에 가까운 물줄기도 퇴적과 침식이 이뤄지면서 예측할 수 없는 물길로 변한다. 이렇듯 강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인다. 사람은 늙으면 죽지만, 강은 홍수를 통해 물길이 거듭나면서 다시 젊어진다.

대지는 만물을 낳고 기르는 뭇 생명의 어머니다. 그리고 강은 이 어머니의 몸속을 흐르는 핏줄이다. 강이 건강해야 대지가 건강하고 그곳을 터전으로 하는 모든 생명이 건강해진다. 강은 상류부터 하구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어느 한 곳이라도 막히거나 변형되면 혼란을 초래한다. 강에는 복잡한 에너지 체계가 관여해 수렴과 확산을 거듭하면서 꼬불꼬불한 물길을 이룬다.

물이 없으면 생명을 이을 수 없다. 인간은 고래로 강 주변에 터전을 마련하고 삶을 영위하면서 강을 다스리는 치수에 힘을 쏟아왔다. 그러나 자연의 이용은 분명 한계가 있는데 이를 넘어서는 건방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모든 것을 인간 위주로만 생각하고 당장 눈앞의 편익만을 좇아 물길을 고치고 둑을 더 높게 쌓아서 강을 가두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연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인간이 억지로 가둔 물길에서 강이 뛰쳐나오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자연은 인간만을 위한 맞춤이 아니다. 인간은 세상 만물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매사 이 진리를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 하는데 인간은 종종 욕심에 눈이 뒤집혀 제 무덤을 파대는 어리석은 짓을 벌인다. 복잡하게 얽힌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우리는 결국 모든 걸 다 잃게 될 것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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