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메가시티… 고향엔 영화관이 없어 청주로 가야 했다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3. 11.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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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확장론·부울경 메가시티 등 생활권 혁신 공감
대한민국은 거듭된 국토종합계획으로 일어선 나라
정쟁화하지 말고 경계 넘어 통합된 국토 계획을
일러스트=이철원

우리 집은 20년 전인 2004년에 연기군 조치원읍으로 이사를 왔다. 인구 4만명의 조치원은 이전에 살던 음성군보다는 번화한 곳이었지만, 없는 것도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없는 시설이 영화관이었다. 조치원에는 2011년에야 영화관이 들어왔다. 그 전에는 영화를 보려면 항상 인근 큰 도회지로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항상 향한 곳은 같은 충청남도인 천안이나 충남의 중심 대전이 아니었다. 대신에 충청북도의 청주시가 나에게 영화관, 큰 서점, 대형 프렌차이즈의 경험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정해진 행정구역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생활권’이라는 개념을 처음 느낀 순간이 그때였다.

성인이 되고 지도에 그려진 선과 점만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생활권을 파악하는 재미를 더 느꼈다. 평택시와 천안시 사이에 있는 천안시 성환읍에서 사회복무요원을 할 때, 직원들 절반은 천안에서, 나머지 절반은 평택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 생활 문화와 언어도 그랬다. 서해를 낀 충청남도 서천은 인근 전라북도 군산과 훨씬 비슷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강원도 정선을 여행할 때는 어렸을 때 살던 충청북도 음성 산골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누구나 자신의 생활 경험으로 알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지도 위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지도 위에 그은 선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경계가 또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알고 있다. 지도의 경계는 일상의 행정부터 장기적 국토 계획, 사람들의 심성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실체적 힘이기도 하다. 경계 짓기는 19세기에 근대국가가 행정을 정비하고, 지도와 숫자를 다루는 관료들이 삶에 개입하고,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더 큰 정체성이 사람들 뇌리에 뿌리 박으면서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변화였다.

때로는 주어진 경계를 넘어서고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어내는 변화도 이루어진다. 교통 인프라 확충은 사람들의 이동 경로를 틀며 생활권도 바꾸어낸다. 하천 수운은 철도로, 철도는 도로로, 도로는 KTX로 바뀌며 실제 생활권은 계속 변화한다. 문제는 이런 실제 생활권 양상과 기존 경계에 입각한 이권, 사고, 그리고 정치가 심각하게 충돌할 때다. 일상적 충돌은 본질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현대 행정은 이 정도 충돌은 쉽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인위적일 수밖에 없는 지금의 경계에 입각하면 미시적 사고와 대단위 사고가 모두 불가능해지고, 생활권 혁신도 불가능해진다. 일례로 올여름의 비극적 오송 수해는 세종시를 담당하는 행복청과 충청북도의 관할권 문제가 빚어낸 비극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제기한 ‘서울 확장론’은 서울의 실제 생활권에 따른 경계의 새로운 조정을 요청하는 시도다. 물론 현 정부에서 처음 얘기가 나온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5차 국토종합계획에서 부울경을 하나로 묶는 동남권 메가시티론도 나왔다. 5차 국토종합계획의 기본 취지 자체가 행정구역의 구획으로 단절되는 국토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들며 통합되는 국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양당이 모두 국토 계획 일신을 통한 생활권 혁신이 필요함에 내심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겠다.

그러니 바라건대 이 논쟁을 양당이 정쟁화하지 말고, 또 서울과 수도권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실제 생활권을 혁신해 내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가? 어떤 연결망을 복원하고 또 어떤 연결망을 새롭게 만들어낼 것인가?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이권이 개입하여 계획의 차질이 생기는 것을 막자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렇게 보면 6공화국과 지방자치제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근본적 물음이 될 수 있는 과제가 제시된 셈이다. 사실 이번 들어 갑자기 제시된 것도 아니다. 이 나라가 애초 몇 차례의 국토종합계획을 통하여 계속해서 공간을 혁신해오며 일어선 나라다. 단순히 어느 지역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오를지만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국토 논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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