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들판, 일곱 빛깔 무지개… 마음의 눈에도 세상이 담기네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년)는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다. 그는 11세에 왕립 아카데미 학교에 입학한 최연소 학생으로 신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훗날 그림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당시에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꼽혔다.
<눈먼 소녀>는 그가 스물다섯 살 때 영국 윈첼시 지방 근처에 머무는 동안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자매로 추정되는 언니와 여동생이 등장한다. 언니의 목에는 ‘눈이 먼 불쌍한 아이’(Pity a Blind)라는 말이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시각 장애인이다. 남루하게 헤진 옷차림과 무릎 위의 손풍금으로 보아 거리의 악사로 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은 소나기가 지나간 후 노란 들판 위 짚 더미에 손을 잡고 앉아 있다. 동생은 고개 돌려 쌍무지개를 바라보고 있고, 언니는 온화하게 눈을 감으며, 대지의 흙 내음과 신선한 공기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림 에세이 <미술관에 간 해부학자>의 저자 이재호 계명의대 해부학 교수는 “망막에 상이 맺히지 않아도 마음의 눈에는 세상이 담긴다”며 “그녀는 눈 대신 마음으로 평화로운 들판과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앞을 못 보는 소녀를 통해 되레 눈뜬 사람들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웠다고 평론가들은 평한다. 그림은 당대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꾼 작품이기도 하다.
흔히들 ‘눈뜬 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벙어리 냉가슴’ 등의 표현을 하는데, 실은 눈 감은 사람이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입 닫은 사람이 더 의미 있는 말을 내놓고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봐야 진정한 세상이 보인다는 것을 <눈먼 소녀>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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