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존의 窓] 스트리트 댄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에릭 존 보잉코리아 사장·前 주태국 미국 대사 2023. 11. 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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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칼럼에서 개선 여지가 보이는 서울의 면면을 언급한 바 있다. 아름답고 역사적인 문화를 담고 있는 경복궁 일대를 개발하면서 문화적 부조화가 생긴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 서울의 역사 중심지인 경복궁의 문화적 영향력이 희석될까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던 글이다. 미국에서 퓨전 한식에 도전할 때마다 비슷한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미국 셰프들이 ‘더 맛있게’ 만들려고 애쓴 비빔밥은 실망스러운 맛을 내기 때문이다. 전통을 고수하다 보니 지난 40년 동안 서울 시내의 한 순두부 집 단골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조건 전통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며 늘 새로운 문화의 사고방식이나 경험에 열려 있고자 한다. 그것이 문화, 경제, 정치 등 모든 면에서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문화 예술을 잘 버무려 자국 문화와 글로벌 문화를 모두 향상시키는 나라가 아닌가! 최근 감명 깊게 본 스트리트 댄스 관련 TV 프로그램에서도 이러한 한국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나는 스트리트 댄스의 ‘스’ 자, 아니 ‘ㅅ’ 자도 모르고, 아내가 인증한 몸치다. 스트리트 음악이나 패션을 즐긴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의 광팬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환갑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 젊은 댄서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흠뻑 빠지다니! 도대체 이 프로그램에 강렬하게 끌리는 이유가 뭘까 고민해본 결과, 평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와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섯 명에서 열 명으로 구성된 여성 댄스 크루끼리 매주 새롭게 받는 미션에 맞춰 안무를 창작해 경연하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 엄청난 성공과 인지도가 걸려 있는 만큼 참가자들은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다. 사실 이런 테마의 프로그램은 이미 아이돌 연습생, 트로트 가수 등 무수히 많이 봐왔지만, 이 프로그램이 유독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째 이유는, 몇 가지 아이디어 ‘재료’를 가져와 ‘믹서기’에 넣고 섞어 완전히 새로운 ‘맛’으로 재탄생시키는 한국만의 특별한 능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스트리트 댄스’라는 다분히 미국적인 문화를 가져와 한국다움을 더해 세계 시청자가 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맛을 만들어 냈다. 스트리트 댄스는 본래 1970년대에 정식 댄스 스튜디오 등 기존 기관을 이용할 수 없는 미국의 소수인종 댄서들을 위해 댄스 스튜디오와 경연 대회가 일부 길거리로 확장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 한국은 이 거친 춤을 가져와 수년간 한국식으로 다듬으며 국제적 접근성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 프로그램의 댄서들은 파격적 서양 패션을 한국 스타일로 소화했고, 미국 도시의 댄서를 한국식으로 표현했다. 그 결과는 가히 환상적이다.

이 프로그램에 담긴 또 다른 한국적 특성은, 팀워크를 다지고 함께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든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같은 팀뿐 아니라 다른 팀 댄서들과도 손발을 척척 맞춰가며 경연하는 장면을 보는 게 너무 좋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참가자끼리 신경전을 벌인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서로 점점 협력하게 되고, 결국엔 함께 시너지를 내며 고난도 안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프로그램 초반에 비해 수준 높은 완성도로 발전하는 것이다. 경연 과정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결과물이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하는 이 프로그램은, 마치 한국 경제성장의 근간이 되는 경쟁적 환경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 기업들은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지만, 또 한편으론 많은 한국 기업이 성공해야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것을 이해한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 관계도 이처럼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는 듯하다.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지만, 또 한편으론 기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주지 않는가. 가령 2030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한국의 중앙과 지방정부가 여야를 막론하고 여러 거대 기업과 손잡고 협력하는 모습에서 한국식 민관 관계를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전통과 현대 문화를 어떻게 섞을지, 정부와 기업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지, 글로벌 파트너의 어떤 사례를 참고할지, 한국은 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해 나갈 것이다. 나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최대한 고뇌하겠지만, 그러는 중에도 맛난 순두부는 꼭 챙겨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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