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인간, 자연, 기술’의 상생을 위하여
프랑스 파리의 센강변에 위치한 오르세 미술관이 원래 기차역이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미술관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커다란 시계도 기존의 건물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흔적 중 하나다. 미술관 자체가 지닌 건축의 미학에 더해, 아름다운 센강과의 조화는 건물 외벽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자연친화적 건축물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방문한 천안 소재의 영화전문 북카페 ‘노마만리’는 통유리창으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광뿐 아니라 그곳에는 일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든 영화 관련 전문서적이 가득하다. 향기로운 커피는 물론이고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는 3층에서는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도 열린다.
건축물의 이미지는 도시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도시정체성은 19세기 근대도시가 생기면서 논의됐고 근래에는 전통적 장소의 복원이나 지역 간 경쟁 강화로 인한 도시개발과 연결된다. 이처럼 건축물은 도시 정체성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도시 속 건축물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물로서 다름 아닌 기술에 의해 드러난다. 따라서 인간, 자연, 기술이라는 세 요소가 도시에서 상생할 때 비로소 바람직한 도시 정체성이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집도 마찬가지다. 장소에 대한 심리적 애착을 강조한 에드워드 렐프는 “집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정체성의 토대, 이른바 존재의 거주 장소”라고 말한 바 있다. 비단 집뿐이겠는가. 기억과 경험이 부여되는 모든 장소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자연을 건축물의 공간으로 품는 사례가 많다. 부암동 어느 높은 자락에, 하늘과 만나는 옥상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한 주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건축가 최두남이 직접 설계한 이 집의 옥상은 마당이기도 하다. 집에 들어서면서 처음 마주하는 일반적인 마당이 아니라 옥상이 마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집 안 공간의 ‘흐름’도 빼놓을 수 없다. 문으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집 안의 모든 공간이 연결됨으로써 시선이 그것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이 집의 진입 공간인 계단의 역할도 흥미롭다. 집 입구의 ‘수축’된 계단을 거쳐 올라갈 때는 옥상으로 이어진 뷰를 예상할 수 없지만 마침내 그곳에 이르러서는 빛과 개방감을 통해 ‘팽창’의 경험을 하게 된다. 집과 성벽의 통일된 곡선을 따라 펼쳐지는 하늘과 공기 가운데 어느새 인간도 집도 자연의 일부가 돼 가는 것이다. 수축에서 팽창으로 향하며 마주치는 자연, 그 시공간이야말로 인간, 자연, 기술이 조우하고 상생하는 사건에 다름 아니다.
건축을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말이 떠오른다. “창턱에 비치는 햇살, 풀밭에 부는 바람도 사건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이 우리가 거주하는 장소의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지금 도시의 빌딩 한가운데 있다면 그 빌딩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기를, 더불어 그 곁에 거주하는 기술과도 조화롭게 조우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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