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 민족적 경사, 공로 독식해선 안돼”

김진형 2023. 11. 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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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2004년 실록 도쿄대 보관 알게 돼
민간주도 시민운동 통해 환수 앞장
조선총독부 개입한 불법반출 증명
평창 귀환 한일양심세력 승리 평가
▲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과 혜문(맨 왼쪽)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2007년 조선왕실의궤의 원소장처인 오대산 사고를 방문한 일본 국회의원들과 면담하는 모습. 사진제공=혜문닷컴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지난 4일 오대산 월정사 입구에 있는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으로 옮겨졌다. 110년만이다. 이번 환수는 민간 주도의 시민운동을 통해 일본에게 조선왕실의 국보를 받아낸 역사적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달래며 진실을 밝혀낸 인물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궤 환수의 실무를 담당했던 혜문 문화재제자리 찾기 대표다. 조선왕조실록 환수위 간사, 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한 그는 70여차례 일본을 오가며 오대산사고본 유출이 조선총독부의 직접 개입으로 인한 불법반출임을 증명하며 환수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광화문 현판 바로잡기부터 대한제국 국새 반환,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바로잡기 등 활동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교과서에 실린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를 ‘송어’로 정정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과로 2012년 국민훈장 목련장, 2014년 대한민국 협상대상을 받았다.

▲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8일 미국 보스턴에서 본지와 화상회의를 통해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에는 미국에 머물며 보스턴미술관으로부터 석가모니 부처, 지공스님, 나옹스님 등 사리 4구에 대한 반환 의사를 확인하는 성과를 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김건희 여사가 방문, 고려시대 유물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을 요청한 이후 관련 협상이 재개돼 화제를 모았다.

▲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와 조선불교도연맹은 2007년 3월 23일 금강산 호텔에서 조선왕실의궤 환수를 위한 공동합의서를 금강산호텔에서 체결했다.

뤼순 박물관에 있는 금강산 장안사 종 환수 등을 목표로 활동중인 혜문 대표는 “이번 실록·의궤 환수는 강원도만의 잔치가 아니다. 문화재 환수 공로를 자기 것으로 독식하지 말아야 민족적 경사가 더 빛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8일 보스턴 현지에 있는 혜문 대표와 화상인터뷰를 갖고 조선왕조실록·의궤의 환수 의미를 물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기억하는 것도 실록의 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와 조선불교도연맹이 2007년 체결한 공동합의문. 조선왕실의궤 환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조선왕조실록 환수 과정을 돌아보면.

=“2004년 일본 교토의 한 고서점에서 ‘청구사초’라는 책을 봤는데, 이중 조선왕조실록이 도쿄대에 보관돼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책 앞 부분에 ‘저자걸정(著者乞正·바로잡아 주시기를 청합니다)’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내게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달라는 영감을 줬다(이후 배현숙 계명대 명예교수로부터 도쿄대가 환수한 실록의 잔본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왕조실록 환수 운동을 펼쳤다. 조선왕조실록의 반환 과정을 보면 정부의 역할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운동을 통해 90일만에 끝난 사건이다.”

▲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일본 내각부 총리실에 조선왕실의궤 환수 진정서를 접수하는 모습.

-2012년 의궤 등 1200권의 책을 돌려받았다.

=“조선왕조실록 반환의 연장선이다. 의궤는 실록을 뒷받침하는 그림이고, 한짝과 같기에 멈출 수 없었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 자료를 통해 일본 궁내청 서고에 의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8년간 70회 정도의 일본을 오가며 정당·시민사회·종교계와 함께 협상했다. ‘내 것이니 돌려달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불법성에 대한 논거를 제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상거래로 취득할 수 없는 물건이 세상이 있기에 일본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불용통물’ 논리를 이어나갔다.”

-올해 100년을 맞은 관동대지진으로 오대산 사고본 조선왕조실록도 대부분 소실됐다는 점이 안타깝다.

=“역사를 잃은 나라에 대한 뼈아픈 교훈이다. 일본이 문화재 보관을 잘한 점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는 인식도 있는데 이는 식민주의 사관이다. 실록이 한국에 남아있었다면 분명 보존됐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문화재 보관을 잘한다는 인식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는 최근 보스턴미술관 동양박물관장 크리스티나 유유에게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요청서를 전달했다.

-국내 환수에 이어 원소장처 평창으로 오는 것의 의미는.

=“원소장처라는 지리적 위치보다는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찾아가려는 노력이었다는 점에 시사점을 부여하고 싶다. 실록은 역사서다. 실록의 결말은 조선 왕실의 패배다. 하지만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을 통해 패배로 끝난 역사가 아니라, 일본 도쿄대와 싸워서 승리했다는 각성으로 기록할 수 있다. 오대산 사고본 반환이 갖는 의미가 드러나려면 문화재 환수 공로를 자기 것으로 독식하려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 그래서는 도쿄대와 싸워서 이겼다는 사실이 부각되지 못한다. 실록과 의궤 반환은 강원도만의 잔치가 아니다. 민족적 경사를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국권 침탈 과정에서 외국에 불법 반출된 국보를 민간 주도로 돌려받은 일이고, 한일 양심세력 승리다.”

▲ 혜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가 일본 도쿄대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는 모습.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보스턴미술관 방문 이후 사리구 반환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

=“2009년 미술관으로부터 사리만 반환 가능하다는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사리구와 함께 반환해야 한다는 문화재청 의견에 따라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김 여사와는) 따로 만남을 가진 적은 없지만, 문화재제자리 찾기 운동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4월부터 보스턴 미술관과 접촉해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을 이야기 해 온 것으로 안다.”

▲ 혜문 대표가 미국 보스턴 박물관에서 라마탑형 사리구를 살펴보고 있다.

-앞으로 문화재 환수와 관련한 활동계획은.

“현재 집중하고 있는 보스턴 일과 더불어 뤼순 박물관 소장 금강산 장안사 종,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구라 컬렉션이 주요 목표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해서 성공에 이를 수는 없다. 상대 편 입장을 파악하고 타당성을 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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