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검도에서 ‘존심’을 지켜야 하는 이유… 영화 ‘만분의 일초’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백수진 기자입니다. 오랜만에 추천 드릴 만한 한국 영화를 발견해 반가운 마음으로 들고 왔습니다. 한국 영화 최초로 검도의 세계를 그린 ‘만분의 일초’(15일 개봉)입니다.
검도는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까지 판정의 대상으로 삼는 특이한 스포츠입니다. 공격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좋아서 팔짝팔짝 뛴다거나 상대를 약 올린다면 점수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거죠. 검도 용어 중엔 ‘존심(存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타격하기 전과 타격할 때, 타격하고 난 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죠.
영화 ‘만분의 일초’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검도의 매력을 오롯이 전합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검도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 오른 재우(주종혁). 선발전에서 용서할 수 없는 원수 황태수(문진승)를 만나면서 재우는 평정심을 잃게 됩니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거나, 일생일대의 순간에 과거의 트라우마와 마주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꽤 고전적이지만, 이 영화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우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검도 액션입니다. 검도라니 정적이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웬걸. 규칙을 잘 모르고 봐도 역동적인 움직임에 빠져듭니다. 호면 속에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눈빛, 포효하는 기합 소리, 타악기처럼 리듬감 있게 부딪히는 죽도 소리, 찰나를 노리고 맹수처럼 달려드는 재빠른 몸놀림까지. 검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액션을 리드미컬하게 담아냅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불꽃 튀는 액션과 대조되는 절제의 미학입니다. 묵묵히 혼자 검을 휘두르는 훈련, 정갈하게 앉아 두건을 두르고 호면을 쓰는 준비 과정, 경기가 끝나고 정좌한 채 호흡을 고르는 묵상 같은 의례들엔 고요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산속의 수련원, 군청색의 도복, 붉은 두건 같은 미장센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느껴집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권모술수 권민우’로 얼굴을 알린 배우 주종혁의 연기도 빛납니다. 드라마를 볼 땐 얄미운 캐릭터에 찰떡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더군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호면을 쓰고도 철망 사이의 눈빛과 검을 꽉 쥔 손으로 재우의 고통을 깊이 있게 표현해냅니다.
재우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붙잡은 채, 손에 힘을 꽉 주고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가벼워지지 않으면 질 것”이라는 극 중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몸에 힘을 빼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소 뻔한 스토리는 아쉽지만, 섬세한 연출력으로 밀어붙이는 신인 감독의 패기가 느껴졌습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건 영화를 보는 큰 기쁨 중의 하나죠. ‘만분의 일초’는 생소했던 검도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영화였습니다. 그럼 저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신선한 작품들을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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