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썩는 거 걱정 말고 그때 쌓아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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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59조 원 넘게 덜 걷힐 한국과 반대로 세금이 잘 걷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라가 영국 서쪽 섬나라 아일랜드다.
아일랜드의 올해 재정 흑자는 100억 유로(약 14조 원)로 경제 규모가 한국의 30% 정도인 나라로선 큰 액수다.
심각한 주거, 교통 문제로 돈 쓸 곳은 많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흑자를 털어 쓰는 대신 저축을 선택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합의한 '15%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맞춰 아일랜드도 세율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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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못 보고 법인세수 탕진한 韓
널리 알려진 대로 아일랜드는 ‘박리다매 법인세 전략’으로 성공한 나라다. 24%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003년에 12.5%까지 낮췄다. 유로존 평균인 21.3%보다 9%포인트 낮고, 24%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연구개발(R&D) 비용 4분의 1을 감면해주는 등 각종 세제 혜택으로 기업들이 실제 내는 법인세율은 6%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메리트를 좇아 세계 20대 다국적 제약사 중 19곳이 아일랜드에 R&D센터,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구글 애플 인텔 메타 등 정보기술(IT) 기업 유럽본부도 아일랜드에 있다. 앙숙인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뒤에는 런던의 금융회사들이 영어가 통하는 더블린으로 몰려들고 있다. 세율은 낮아도 법인세수가 늘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심각한 주거, 교통 문제로 돈 쓸 곳은 많지만 아일랜드 정부는 흑자를 털어 쓰는 대신 저축을 선택했다. 재정 흑자 일부를 매년 떼어내 연금 고갈에 대비한 ‘미래기금’, 기후변화 등에 대응할 ‘인프라·기후기금’ 등 2개 국부펀드에 1000억 유로를 쌓는 게 목표다. 이런 결정에는 2000년대 중반 ‘1차 법인세 호황’ 때 재정을 낭비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만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때의 트라우마가 작용했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합의한 ‘15%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맞춰 아일랜드도 세율을 높여야 한다. 그간 누려온 낮은 법인세율 프리미엄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 대비해 정부가 저축에 나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관심 없이 넘겼을 뿐 지난 몇 년 새 한국에도 법인세 특수가 있었다. 2017년까지 50조 원대였던 법인세수는 2018, 2019년 연속으로 70조 원을 넘었다.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일시적으로 55조5000억 원으로 뚝 떨어졌지만, 재작년에는 70조4000억 원으로 회복됐고 작년엔 103조6000억 원이란 사상 최대 규모의 법인세가 걷혔다.
그 2년간 법인세수가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은 건 코로나19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정부는 경제 전반에 팬데믹 충격이 올 것으로 봤지만 실제 피해는 자영업 등 대면경제에 국한됐다. 전 세계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각국 정부가 지원금까지 풀면서 전자제품 등 내구재 소비는 급증했다. 반도체를 위시한 한국 수출기업은 호황을 맞았고 세금도 그만큼 더 냈다. 코로나19 종료 후 수출과 법인세수가 동시에 급속히 감소한 데에는 팬데믹 특수의 거품이 꺼진 영향이 크다.
현명한 정부라면 이런 특수 상황에서 세금이 더 걷힐 때 그 뒤 찾아올 세수 감소를 대비해야 한다. 아일랜드 정부가 지금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가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할 정도로 더 걷힌 세금을 쓸 곳에만 골몰했던 문재인 정부에선 기대할 수 없던 일이다. 올해 급감한 세수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은 달랑 1%포인트 깎아준 법인세율, 부자감세 때문이라며 ‘국가 부도 위기’ 운운하고 있다. 염치없는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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