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민주당은 감 떨어지기만 기다린다”

원재연 2023. 11. 8.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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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패착에 강서구 보선 이기고도
이슈 밀리고 노란봉투법 힘자랑만
혁신 외면하고 정권심판론 기대면
내년 총선서 민심 회초리 못 피할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직후 “국정 실패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다. 민주당의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몸을 낮췄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라면서 “더 겸허히 민심을 받들겠다”고도 했다. 맞는 말이었다.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여권이 헛발질한 반사이익을 챙긴 결과였다.

이 대표의 ‘겸손 모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가 낸 메시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이 대표가 단식을 끝내고 당무에 복귀한 당일 일성은 “내각 총사퇴”였다. 민생을 돌보라는 민심을 받들겠다면서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대여 공세에 나선 것이다. 체포동의안 가결파 의원 5인 징계 논란에 대해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내 화합을 주문했다. 하지만 곧바로 친명계 최고위원은 “잠시 미뤄두자는 것”이라고 다른 소리를 했다. 강성 지지층의 비명계 공격도 계속됐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이들에게 경고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지명직 최고위원에 친명계 박정현 전 대전 대덕구청장을 임명한 것도 이 대표의 당내 갈등 해소 의지를 의심케 한다. 이 자리는 체포동의안 가결 여파로 비명계 송갑석 최고위원이 물러나면서 생긴 공백이었기 때문이다. 친명 일색인 지도부 색깔이 더 짙어졌다는 비판이 나오자 이 대표는 “그분이 친명입니까. 저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여권발 혁신과 정책 이슈에 밀리면서도 민주당에선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메가 서울’에 대해선 수도권 표를 잃을까 봐 입장 표명을 회피하면서 눈치만 살핀다. 한시적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선 “우리 당이 먼저 했다”는 한가한 말만 되풀이한다. 이 대표가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열어 ‘성장률 3% 회복을 위한 제안’을 내놨지만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구체적인 성장 전략은 없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 활동을 평가절하하면서도 자기 혁신은 외면한다. 김두관 의원이 “우리도 국민의힘보다 더 많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지도부 반응은 시큰둥하다. ‘친명기획단’이란 비아냥을 받는 총선기획단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혁신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와중에 당 안팎에선 ‘총선 200석 확보’ 발언이 잇따른다. ‘20년 집권’ 운운하다 5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보선 승리에 취한 모습이 역력하다. 당내에선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만 기다린다”(조응천 의원), “(축구 경기에서)1 대 0으로 이기고 있다고 우리 진영에서 공 돌리고 있다”(박용진 의원)는 쓴소리가 나오지만 소리 없는 메아리다.

정부·여당에 빼앗긴 정국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꺼내 든 카드는 또 국무위원 탄핵과 쟁점 법안 강행 처리다.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신중해야 할 탄핵을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남발하는 것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노란봉투법 등을 거대 의석을 무기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도 뻔하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흠집을 내려는 속셈이다.

지금은 민주당이 혁신에 눈감은 채 힘자랑할 때가 아니다. 여권 움직임 특히 윤 대통령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껏 몸을 낮춘 모습을 과소평가해선 안 될 것이다. 취임 이후 여소야대의 한계를 절감한 윤 대통령은 누구보다 총선 승리가 간절하다. 총선 패배는 레임덕을 의미하는 까닭이다. 대통령은 무엇이든 할 것이다.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무궁무진하다. 여당 지도부·친윤의 험지 출마도 대통령이 결단하면 가능하다.

선거는 절실한 쪽에 유리하다. 정신을 먼저, 제대로 차린 쪽이 이길 가능성이 큰 것이다. 보선에서 쓴맛을 본 여권이 혁신과 정책으로 총선판을 흔드는데 민주당은 ‘정권심판’이란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린다면 민심의 매서운 회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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