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CFE 탈퇴 선언에 미·나토도 “효력 중단”…신냉전 군비 경쟁 가속화되나

러 발표 몇시간 만에 맞대응
구소련 때 체결 조약 또 폐기
배경에는 미·러 ‘깊은 불신’중국 부상에 ‘무용론’ 제기도

냉전 말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체결한 군비축소 조약인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이 나토와 러시아의 탈퇴 및 중단 선언으로 효력을 상실했다. 서방과 러시아가 냉전 시기 체결한 군축 조약들이 미국·유럽과 러시아·중국 간 신냉전을 맞아 하나둘 폐기되면서 강대국들의 군비 경쟁이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나토는 7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유럽·태평양 안보 구조의 초석으로서 CFE가 해온 역할을 감안할 때 동맹국은 조약을 준수하고 러시아는 준수하지 않는 현 상황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국제법상 권리에 따라 필요한 기간 동안 CFE의 효력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CFE에서 탈퇴하고 CFE 당사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며 오는 12월7일부터 CFE 의무 이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날 나토와 미국의 CFE 효력 중단 선언은 러시아가 CFE 탈퇴를 공식 선언한 지 몇 시간 뒤에 나온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오전 “0시를 기해 CFE 탈퇴 절차가 완료됐다”며 “2007년 우리에 의해 효력이 중단된 이 조약은 마침내 우리에게 역사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CFE는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글로벌·유럽 안보 구조 형성이 가능했던 냉전 말기에 체결됐다”면서 “러시아의 근본적 안보 이익을 고려할 때 이제는 CFE를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CFE는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재래식 무기 보유 목록과 수량을 제한하기로 한 조약으로 1992년 발효됐다. 소련 해체 이후 상황을 반영해 1999년 한 차례 개정됐으나 러시아만 비준하고 미국과 나토는 몰도바와 조지아에서의 러시아군 철수를 주장하며 비준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에 CFE가 나토 확장에 이용된다면서 2007년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2015년에는 CFE 합동자문그룹에서 탈퇴했다. 지난 5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CFE 파기 법령에 서명했다.

CFE는 근래 폐기된 네 번째 군축 조약이 됐다. 2019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러시아의 지속적인 핵무기 개발 및 배치를 이유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러시아는 올해 2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아직 발효되지 않은 조약이긴 하지만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대해 러시아가 지난 2일 비준 철회를 발표했다.

냉전 시기 서방과 소련 사이 체결된 군축 조약들이 몇년 사이에 잇따라 폐기되면서 군비 경쟁이 가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냉전 종식을 상징하는 CFE와 INF가 신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근래 들어 폐기됐다는 점은 시사점을 던진다.

각종 군축 조약이 종언을 고하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러시아 간 불신이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변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미·러를 두 축으로 했던 냉전기 군비 경쟁이 미·중·러 3자 구도로 전환한 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하지 않는 기존 군축체제의 무용론이 미국 쪽에서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중·러가 다시 한번 ‘힘의 균형’을 이룸으로써 3자 간 군축 모색의 필요성이 대두하기까지 무한 군비 경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윌리엄 알베르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 군축 담당 국장은 AP통신에 “심각한 군비 경쟁으로 치닫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투명성과 리스크 축소, (군비) 경쟁에 대한 가드레일”이라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