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주둔, 행정은 이양…네타냐후의 모순된 ‘전후 구상’
최대 우방이 선 긋자 이스라엘 정부 서둘러 수습 나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사진)가 하마스와의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안보를 “무기한 책임지겠다”고 주장한 데 따른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의 재점령에 반대한다”며 재차 선을 긋자, 이스라엘 관리들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을 주둔시키겠지만 민간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두 국가 해법’과도 배치되는 데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반발로 또 다른 충돌의 싹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반발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7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이스라엘을 위해 좋지 않다고 여전히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 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해 무기한으로 전반적인 안보 책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한 미국 측의 첫 반응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재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우방’ 미국이 선을 긋자 이스라엘 관리들은 전후 가자지구 통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수석보좌관인 마크 레게브는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이 주둔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군사 주둔과 정치적 통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 코헨 외교장관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민간 행정을 다스릴 의사가 없다”면서 “통치에 대한 책임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중동 국가 다수를 포함한 유엔이나 팔레스타인 내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 넘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스라엘은 전후 가자지구에 대한 행정 통제권을 국제사회나 민간 과도 정부에 맡기되, 이 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제는 강화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들은 중동 국가들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재건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스라엘군과 신베트 등 정보기관이 안보 조치를 감독하는 방안을 정부가 구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스라엘 정부는 군이 가자지구 전체를 통제할 것인지, 어느 정도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킬 것인지에 대해선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은 1976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뒤 가자지구를 점령했고, 2005년 가자지구에서 정착촌과 군대를 철수시켰다. 하지만 유엔과 유럽연합(EU) 등은 이스라엘이 봉쇄 정책으로 가자지구의 영공 및 영토를 통제하고 팔레스타인 인구 등록까지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이곳을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정부 인사들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전쟁 이후에도 이런 봉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가자 내부에 군을 주둔시켜 군사적 점령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가혹한 봉쇄 정책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의 극한 반발을 불렀던 이스라엘이 책임지는 ‘안보’가 지역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나온다.
가디언은 “네타냐후의 모호한 전후 구상은 ‘안보를 위한 공식’이 아니라 ‘폭력의 또 다른 장’을 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이 전쟁 후 이 지역을 사실상 군사적으로 점령할 의사를 내비치면서도 주민에 대한 행정 책임은 맡지 않겠다는 것은 국제인도법 위반이라고도 지적했다. 국제인도법의 근간인 제네바협약은 “점령군은 식량과 의약품은 물론 의복과 피란처, 생존에 필요한 기타 물품을 점령지의 민간인에게 적절하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협력해 이런 전후 구상에 동참할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전후 가자 통치를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만, 하마스가 축출되더라도 PA의 가자지구 장악은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미 PA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 보장 등 포괄적 해법이 있어야만 가자지구로 복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이곳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한 이들이 가자 통치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치피 리브니 전 이스라엘 외교장관은 WSJ에 “이스라엘이 가자에 장기간 머무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아무도 가자지구에 들어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문제”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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