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순딩이 순두부

기자 2023. 11. 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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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없이 세월이 훅 가. 휙~ 가는 거 말고 훅~ 가는 거 말이야.

일없이 기도만 하고 눈을 감은 채 살던 전도사가 있었는데, 타고난 말재주로 여자친구를 만들었대. 장차 장인 장모가 될 어른들을 뵈러 간 길. “장래 희망은 뭔가?” “성경을 공부해서 교수가 될랍니다.” “그러면 공부하는 동안 내 딸은?” “주님이 알아서 돌보실 겁니다.” “결혼해서 살 집은 있나?” “주님이 다 해주실 겁니다.” “결혼반지라도 살 돈이 있는가?” “그것도 주님이 알아서 해주실 겁니다.” 전도사가 돌아가고 나서 아버지 왈, “저 녀석이 말하는 주님이란 곧 나를 두고 한 말이구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뜬금없이 아프기도 했고, 마지막 두어 장 달력이 아쉽고 서운해. 뭐 한 일이 있다고 벌써 11월. 한 해가 쉬이 저무는 것처럼 인생도 무뿌리처럼 첨엔 단단, 아니 딴딴했었는데, 연두부처럼 흐물흐물해진 거 같아. 저녁에 찬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두부를 굽기로 했어. 한여진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과연 그런 거 같아. 하루아침 사이에 한파 특보.

두부의 원재료는 콩. 알콩달콩 달달한 콩콩. 콩의 원산지는 옛 고구려 땅. 콩은 기원전 3000년경 고조선에서부터 유래한다. 우리 겨레 속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속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를 봐도 우리가 얼마나 콩을 애정하는 겨레인지 알 수 있지.

착하고 순한 사람이 먹는 순두부. 둘이 나눠 먹을 수 있게 찌개를 끓일까나. 바지락을 한 움큼 넣으면 쿰쿰하지 않고 시원해지는데, 바지락이 입을 벌릴 때 입천장을 데 가면서 먹어야 맛나지.

강 대 강의 대치. 일단 세게 나가고, 세게 말하고, 세게 부딪치고 보는 싸움박질 세상. 패자와 꼴찌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아. 다들 칼을 입에 물고는 1등이래. 순하디 순한 순두부, 연하디 연한 연두부를 즐겨 먹으면 세상이 달라지려나.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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