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기후위기와 인류의 미래
지난 11월2일 우리나라 전역의 날씨는 마치 초여름 같았다. 무려 30도에 가까운 낮 기온을 보여준 곳도 있었고, 그날 하루 중 최저 기온이 1907년 시작된 우리나라 기상 관측 116년 역사에서 가장 높았던 곳도 여럿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올해 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 고온, 홍수, 그리고 대규모 산불 등의 자연 재해가 그치지 않았다. 기온이 상승하면 숲의 나무가 머금고 있는 액체 상태의 물은 기체인 수증기로 변해 나무에서 대기로 옮겨간다. 해가 떠 온도가 높아진 한낮에 아침 이슬과 안개가 사라지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결국 대기의 기온이 높아지면 숲이 건조해져 산불 규모가 커진다. 기온 상승으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으면, 당연히 강수량이 늘어 홍수 피해가 커지고, 당연히 에너지가 커져 태풍 피해도 커진다. 태풍, 홍수, 산불의 규모는 지구의 기온 상승과 함께 커진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10월23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후과학자 하우스파더(Z Hausfather)의 글에는 1850년대 이후 매년 바다의 월평균 온도 변화의 추이를 보여주는 그래프도 담겨 있었다. 올해 9월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8도 더 높았다. 작년까지의 신기록이었던 1.3도가 1년 만에 1.8도로 훌쩍 높아졌다. 올해는 과거 2000년의 기간 중 가장 뜨거운 해로 기억될 것이 확실하다. 더 큰 걱정이 있다. 최근 15년 정도 안에 일어난 기온 상승은 그 이전보다 더 가파르게 일어나고 있다. 여러 기후학자가 마지노선으로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하루 안에도 10도 정도 오르내리는 매일의 기온과 비교하면 1.8도가 큰 값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 김병권은 강연에서 지구의 평균 기온을 우리 몸의 체온에 비교해 볼 것을 권했다. 체온이 몇 도만 올라도 우리는 해열제를 먹고 응급실로 간다. 지구 평균 기온도 마찬가지여서 몇 도만 올라도 회복이 어려운 피해가 생길 수 있다. 게다가, 감기에 걸린 사람 체온은 며칠 뒤면 내려가지만, 현재 지구의 높은 체온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기온 상승을 늦추거나 되돌리는, 해열제 복용에 해당하는 기후 위기 대응 노력이 턱도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기온은 앞으로 한동안은 계속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지금은 명백한 기후 위기의 시대다.
지구가 지금 심한 몸살감기를 앓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지구는 무탈하다. 오랜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에서 지금보다 기온이 높았던 때도, 대기에 산소가 없던 때도 있었다. 현재의 기온 상승으로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사진 ‘창백한 푸른 점’을 떠올린다. 우주를 떠다니는 예쁜 우주선 ‘창백한 푸른 점’호의 좁은 내부 공간을 우리는 그간 무한한 크기로 여겼다. 얼마든지 가져다 쓸 수 있는 무한한 자원이 저 작은 점 안에 있으며, 우리가 무얼 해도 이 작은 우주선이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리라 여겼다. 지구의 기온을 올린 것도 우리고, 현재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기후 변화의 이해는 과학의 문제지만,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결국 사회와 정치의 문제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상상해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노력에 달렸다. 아무리 작은 숫자여도 일정한 경제 성장률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 경제 규모는 무한대를 향해 발산한다. 하지만, 유한한 작은 지구에서 인구가 무한히 늘 수도 없고, 우리 인간이 무한히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자명한 수학적 결론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이 없어도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가 생존을 이어갈 수 있는 먼 미래의 유일한 모습이다.
산업혁명 전의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생산성은 끊임없이 증가하겠지만, 줄어들 총 노동의 양을 1인당 노동 시간을 줄여 해결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필요도 없다. 걱정스러운 기후 위기의 시대에 나는 거꾸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1인당 노동 시간이 0으로 수렴하는 미래, 하루만 일하고 364일은 책 보고, 영화 보고, 가족과 산책하는 먼 미래를 꿈꾼다.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행복한지가 경쟁의 잣대가 되는 미래를 꿈꾼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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