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불확실성 큰데 전기료 인상까지…대기업들 "부담 가중"(종합)
지난해 사용량에 인상분 단순 적용시 삼성전자 3천억원 추가 부담해야
(서울=연합뉴스) 재계팀 = 정부가 8일 대기업이 주로 부담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평균 10.6원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산업계는 전기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고려하면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경영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또다시 가중돼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안은 대용량 고객이 사용하는 산업용(을)에만 적용된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은 동결됐다.
산업용(을) 이용 고객은 전체의 0.2%에 불과하지만, 24시간 가동되는 대규모 생산시설 등 대기업 사업장이 다수 포함돼 이들의 전력 사용량은 총사용량의 절반에 육박한다.
국내에 대규모 제조공장을 둔 전자업계는 이번 요금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분이 만만치 않은 수준이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전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국내 사업장에서 쓴 전력은 총 2만1천731기가와트시(GWh)다.
작년 kWh당 118.7원이었던 산업용 전기 판매 평균단가를 단순 적용하면 삼성전자가 작년 한전에 낸 전기요금은 2조5천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인상분(kWh당 13.5원)을 적용하면 3천억원 가까운 요금이 추가로 발생한다.
SK하이닉스는 같은 해 국내에서 1만41GWh를 사용해 약 1조2천억원의 전기요금을 한전에 지불한 것으로 추산된다. 역시 같은 기준으로 이번 요금 인상안을 반영하면 추가 부담액은 1천350억원대에 이른다.
업계 관계자는 "한전의 경영난 등을 감안하면 전기요금 인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올해 이미 전기요금을 올린 상황에서 또 인상하게 되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사업 규모와 공장 가동시간 등에 따라 기업별로 영향에 차이는 있겠지만 부담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라며 "기업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장비와 설비를 적극 도입하고 전기 사용 절감 방안을 추가로 마련하는 등 자구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법인세법 개정 등으로 기업들의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을 독려하는 추세를 고려할 때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부담을 지우는 것은 엇박자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대표적 제조업종인 자동차·조선업계도 요금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전기요금 지출 감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대응책을 모색할 계획이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생산 비용이 늘어나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 수익성 악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생산 비용 증가가 제품 가격 인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업계는 조선소 스마트화, 사무실 소등, 전력 효율이 낮은 노후 장비 교체, 장기적인 설비 투자 등 전기요금 지출을 최소화할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
시멘트업계도 전기요금 인상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전기요금이 시멘트 제조 원가에서 유연탄에 이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멘트업종은 이번 인상안에서 전기요금 인상폭이 가장 큰 고압B(154㎸)에 해당해 타 업종보다 부담이 클 전망이다.
한 시멘트업체 관계자는 "공장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대략 전력비용 상승률이 두 자릿수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아무리 유연탄값이 싸도 전기가 없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어 시멘트업종에서 전기는 산소와 같다"며 "전기요금이 오르면 당연히 수익성에 영향이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 방침에 따라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비용 증가가 더욱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쌍용C&E가 최근 대체연료 사용과 저탄소 원료 대체율 향상 등을 위해 8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업체들의 투자 비용은 수천억원대에 이른다.
고로 방식과 전기로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철강업계에서는 전기로 생산 비중이 큰 회사의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전기로 생산 비중이 절반에 달하는 현대제철은 이번 인상 조치로 연 수백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탄소 규제 강화 속에 철강사들이 전기로 도입을 늘리는 것도 전기요금 인상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포스코는 2026년 광양, 2027년 포항에 각각 전기로를 신규 가동할 계획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전기료가 저렴한 야간 가동률을 올린다거나 생산을 효율화하는 등 원가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철강업계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연료비 연동제를 조기 시행하고, 전력산업 기반 기금 요율 부담을 완화해주는 등 방안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상용 권혜진 김동규 임기창 김아람 이승연 기자)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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