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수에게 필요했던 전자발찌 [박미랑의 범죄 속으로]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2023년 10월 30일 김길수는 환전 사기 광고를 올렸다. 환전을 위해 돈을 들고나온 사람을 만나자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현금 7억 원이 넘게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지만 이내 체포되어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며칠 후 그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세 조각으로 나누고는 일부를 삼켰다. 그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기에 그는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이동한다. 플라스틱을 삼킨 채 구치소로 간 그는 복통을 호소하였고, 저녁 8시 반쯤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아침, 교도관은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가겠다는 김길수의 수갑을 풀어주었고 김길수는 탈주범이 되었다.
탈주 사건은 그리 빈번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자의 탈주 사건은 다른 어떤 강력사건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사회에 큰 두려움을 낳는다. 범죄 관련 교양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예산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가장 이상적인 교도소를 디자인해 보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학생들은 높은 담장에 철조망을 감았고, 전기 충격 기능을 장착한 교도소를 설계하거나 혹은 아주 외딴섬에 바다 깊숙이 교도소 터를 잡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학생들이 교도소 설계 시 공통적으로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탈옥 방지였다. 범죄자의 탈옥은 시민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교정당국이 신경 써야 할 기본이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교정당국이 이 기본을 놓쳤다. 다행히 그는 붙잡혔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의 재소자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후진적인지 알 수 있었다. 플라스틱 숟가락을 쪼개서 삼키는 행동이 어디 실수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던가? 유치장이나 구치소에서 볼펜, 칫솔 등의 온갖 것을 삼키고 밖으로 나가고자 시도한 사례는 과거 한두 건이 아니다. 이전에도 강도강간 혐의로 6년의 복역 경력이 있었던 그가 새로운 사기범죄로 경찰에 체포되자마자 숟가락을 쪼개 삼킨 것은 어떻게든 도망쳐보겠다는 계획과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그런 그를 경찰이 구치소에 인계할 때, 교정당국이 병원으로 이송할 때, 그 위험성을 몰랐을까? 과연 무슨 대비를 했을까? 탈주 이후 한 시간이나 지나 허둥지둥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은 아무런 대비가 없었음을 쉽게 짐작게 한다.
교정시설에서 재소자를 이송하는 일은 늘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송에는 계호 인력이 필수로 따라붙는다. 김길수처럼 일시적 치료를 요하는 상황 말고도 장기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런 이송은 양쪽 기관에 모두 부담이다. 계호가 충분하지 못하면 병원이 두렵고, 계호 인력이 빠지면 교도소 관리가 힘들다. 쉽게 인력을 늘리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인력에만 의존하는 계호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길수는 잔머리를 썼고, 교정은 관성에 젖어 긴장을 늦췄다. 그러나 무능한 계호를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문제이다. 교정시설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을지언정, 교정시설 밖에서 범죄인을 계호하는 데 수갑 하나에 의존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갑은 사실 두 개의 팔찌를 쇠사슬로 연결한 것에 불과하다. 고대 이집트 때에도 있었던 이 형구는 2023년이 될 때까지 발전된 것이라고는 손목의 굵기에 따라 조정하는 기능이 전부이다.
우리는 형기를 모두 종료하고 나온 범죄자에게도 위험성을 소급적용하여 전자발찌를 채우는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나아가 보석 대상자에게도 전자팔찌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죗값도 다 치르지 않았거나, 구속상황이 유지되어야 하는 피고인의 이송에 아무런 추적 기능 없는 수갑만 채워 이동하는 모습은 2023년에 적절한 그림이 아니다.
교정당국의 범죄자 관리가 더욱 엄격해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스마트해져야 할 것이다. 병원에 가겠다는 김길수에게 필요했던 것은 수갑과 더불어 스마트한 전자발찌였다. 그리고 이는 미래의 김길수와 형 집행이 정지되는 모든 범죄자에게도 필요하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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