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여성 약진’을 보며
[똑똑! 한국사회]
[똑똑! 한국사회]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2023년 노벨 물리학상은 아토초 섬광을 만드는 실험 방법을 제시한 세명의 물리학자가 공동 수상했다. 접두어 ‘아토’에 시간단위 ‘초’를 붙인 아토초는 무려 100경분의 1초이니, 눈 깜빡할 사이를 뜻하는 순간과도 비교 안 될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10억분의 1을 뜻하는 접두어 나노가 일상어로 자리 잡기 무섭게 10억분의 1나노인 아토가 등장하는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가 놀라울 뿐이다.
수상자 안 륄리에 교수는 1903년 방사능과 라듐을 발견한 마리 퀴리, 1963년 원자핵 껍질 구조를 제안한 마리아 괴페르트메이어, 2018년 레이저 물리학 분야를 개척한 도나 스트리클런드, 2020년 블랙홀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입증한 앤드리아 게즈에 이은 다섯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다. 노벨 과학상에서 여성 수상자 비율은 3% 정도다.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은 스웨덴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산을 기금으로 문학, 화학, 생리의학, 평화, 물리학, 경제학 여섯 부문에서 인류 복지에 공헌한 사람과 단체에 수여된다.
올해 노벨상은 과학상보다도 경제학상에 더 눈길이 갔다. 클로디아 골딘은 여성 노동시장에 관한 이해를 발전시킨 공로로 2009년 엘리너 오스트롬, 2019년 에스테르 뒤플로에 이은 세번째 여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골딘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든 시기는 세번이며 가장 최근은 1980~2005년 사이다. 격차 감소 이유는 세계대전 여파로 과거에는 사회제도와 통념 때문에 결혼 전까지만 일하던 여성의 노동 활동이 길어진 한편 교육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05년 이후로는 왜 성별 임금격차가 줄어들지 않는 걸까? 성평등 개념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대학을 졸업한 여성 비율이 오히려 남성보다 높아졌는데도 12%포인트 격차는 여전하다. 그가 기록보관소를 뒤져가며 미국 역사에 버금가는 오래된 자료로부터 최신 자료까지 세심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찾아낸 원인은 일반적인 짐작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원인은 결국 결혼, 출산, 육아였다.
서구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여성은 ‘직장생활은 결혼 전까지만’이라는 사회적 제약에 얽매였고, 성별 임금격차의 시작은 첫아이 출생 시기와 맞물려 있었으며, 같은 교육을 받은 배우자와 임금 차이는 육아 기간을 거치면서 크게 벌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골딘은 ‘탐욕적 직장’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고용주의 윤리·도덕적 상태가 아니라 경제 구조에서 제도적 배제의 원리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생산해 낸 산출물량에 따라 대가를 주던 산업혁명 이전과 달리, 오늘날의 경제 제도에서는 매일 출근해서 고정된 시간만큼 노동하고 계획되지 않은 야근이나 추가 근무에도 불평 없이 일하는 직원일수록 임금 상승폭이 크다. 경제공동체인 부부는 둘 중 한명은 임금을 위한 노동을, 나머지 한명은 육아를 더 부담하는 선택에 내몰린다. 따라서 부부 각자의 첫 임금이 비슷했을지라도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 단절이나 유연한 근무시간을 가져야 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 사이 임금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 골딘의 연구 결과이다. 해결책으로 그는 원격회의와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 활성화를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높고 심지어 세계 최고다. 하지만 성별 임금격차는 31.1%포인트로 가장 크고(평균 11.9%포인트) 성별 고용률 차이도 17.5%포인트로 평균(14.7%포인트)보다 크다. 유교문화 속에서 전례 없는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뤄낸 우리의 그림자일지 모른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전담하니, 여성이 일하기 위해서는 육아에서 이를 보완하는 사회제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육아휴직과 복직, 어린이집, 원격회의, 유연근무가 자연스러워질수록 우리에게 노벨상도 가까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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