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뛰어든 민생경쟁, 검찰도 하자

김원철 2023. 11. 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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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지난 1일 오전 ‘현 정부의 언론장악시도 중단 및 언론자유보장 촉구 전국 법률가, 교수, 연구자 300인 선언 기자회견’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 검증 보도’에 대한 검찰 수사와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민변 제공

[뉴스룸에서] 김원철 | 사회부장

‘쎄한’ 느낌이 든다면, 맞습니다 그 느낌.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혼자 엉뚱한 골목에 서 있는 듯한 바로 그 느낌. 그때예요. 되돌아가세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발주자’들이 등을 돌린 건 지난달 11일부터였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오기 공천’이 대패를 불러왔고, 이후 대오각성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거든요. 과거와 드잡이하며 싸울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려운 국민들의 민생 현장을 더 파고들겠다. 용산의 비서실장부터 수석, 비서관 그리고 행정관까지 모두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국민들의 민생 현장에 파고들어 살아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어라.”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고 ‘민생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당장 윤 대통령부터 다시 대통령선거 후보라도 된 양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민생 타운홀 미팅’,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 이어 지난 6일에는 수도권 주민들과 함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개통 준비 상황을 점검하며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었습니다.

이에 질세라 여당도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 안을 내놓더니, 엿새 만에 ‘공매도 전면 금지’라는 대형 의제를 던졌습니다. 워낙 속도전을 펼치다 보니 논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큰 정책들을 섣불리 발표한다는 비판이 당내에서조차 나올 정도입니다.

두달 전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습니다. 김만배씨와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저축은행 사건 무마 의혹’ 관련 인터뷰를 하고 그 대가로 1억6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 9월1일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던, 그때 말입니다.

나흘 뒤(5일) 대통령실이 전면에 나서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 사건”이라고 프레임을 규정했고, 검찰은 이틀 뒤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출범시키며 ‘발주자’의 주문을 접수했습니다. 전국 최정예 특별수사 전문 검사들이 있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를 중심으로 검사 10여명이 투입된 대규모 팀이었습니다. 특수부 검사 10여명이, 현직 대통령이 피해자인 사건을 대대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한 기이한 장면이었습니다.

‘발주자’들은 이제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운명이 걸린 총선을 반년 앞두고 싸늘한 바닥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연일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던 국민의힘에선 지난달 11일 이후 ‘가짜뉴스 척결’ 구호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집니다. “이번 기회에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며 서슬 퍼런 주문을 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연일 ‘민생’ 타령입니다.

검찰이 이 엉뚱한 골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가 하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다행히(?) 이 사건은 명예훼손 사건입니다. 반의사불벌죄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할 수 없습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이 한마디면 지금까지 벌어진 수사가 없던 일이 됩니다. ‘피해자 윤석열’의 고소가 없는데도, 검찰이 자신들은 손댈 수 없는 명예훼손죄를 수사하면서 시작된 이 기이한 국면을 끝낼 수 있습니다.

‘피해자’ 윤 대통령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하면 됩니다. 대개 언론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소를 제기합니다. 부장판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중재부가 조정해줄 겁니다. 조정이 성립하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기 때문에 빠르고 저렴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조정이 맘에 들지 않으면 거부하고 소송을 낼 수도 있습니다. ‘언론사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고소장을 제출한다 해도 특수부 검사 10여명이 언론사 여러 곳을 압수수색해주는 특별대우는 오직 현직 대통령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다른 국민과 동일한 권리구제 절차를 밟으시길 권합니다.

“전세사기범과 그 공범들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 반드시 처단해 주기 바란다.”

본인이 지난달 30일 검·경에 내놓은 이 주문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지구 끝까지 쫓으려면 최정예 검사들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대통령을 피해자로 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검찰을 풀어주고, 그들도 ‘민생경쟁’에 동참하게 하세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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