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 갈라치기’로 지방 망가뜨리는 중앙정치

한겨레 2023. 11. 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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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경기 김포시 한 도로에 ‘김포시→서울편입 공론화 신도시 주민 설명회’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소순창 |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화가 났다. 선거 때마다 자치분권, 균형발전 정책이 왜곡돼 국가의 백년대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중앙정치가 지방을 재단하고, 지역주민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표 계산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더욱 과감해진다.

울산광역시장을 역임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갑자기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을 발표하고 특위까지 구성했다.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이 전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김포시를 볼모로 잡은 것이다. 선거전에 돌입하면 지방자치가 정쟁화돼 합리적 논의보다는 포퓰리즘으로 전락했던 지난날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국민 갈라치기’에서 이번에는 ‘국토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같은 날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4+3 초광역권 특화발전’으로 수도권의 집중을 바로 잡고 지역균형발전과 지방경쟁력을 제고하는 구상도 내놓았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종합계획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고,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과도 궤를 달리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가 엇박자라 국민만 헛갈린다. 여당 대표는 좀 더 심사숙고해서 부울경,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충청, 제주, 강원,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수도권의 쏠림현상을 막고, 지역의 ‘지속가능한 자치분권 및 균형발전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제안하기를 바란다.

서울은 이미 인구와 대도시로서 기능이 포화상태고, 수도권의 쏠림 현상은 임계치를 훨씬 넘어버렸다. 오래된 인프라는 열악해져 재편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김포를 편입한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김포시는 서울 25개구의 배후지로 혐호시설만 모일 수 있다. 부동산이 오른다는 것은 정치권의 속임수이다. 고양시가 서울 인접지역 중에서 아파트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서울 의존형 베드타운으로 멈춰버린 한계 때문이다. 경제권(산업)과 생활권이 함께 만들어지는 자족적 도시로 거듭나지 않으면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그치고 만다. 김포시는 서울 의존형 도시에서 벗어나 자족도시로서 꿈을 키워야 한다.

김포시가 서울시의 자치구가 되면 자치분권의 관점에서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다. 먼저 지방세에서 현재 김포시의 세목은 5가지인데, 서울시로 편입하면 등록면허세와 재산세 두 가지로 줄어들어 세수가 2500억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김포시민들은 세금이 줄어들었다고 좋아할 게 아니다. 세금은 똑같이 내고 김포시로 올 것이 서울시로 가는 것뿐이다.

김포시는 올해 2월1일 50만 대도시에 공식 진입했다. 50만 대도시의 특례를 인정받아 할 수 있는 기능이 그만큼 많아졌다. 대도시로 성장한 김포시는 ‘25개 분야 약 80개 사무’를 직접 처리할 수 있는 폭넓은 자치권한을 갖게 됐다. 이러한 재정과 권한을 포기하고 서울시로 편입한다는 것은 다 큰 어른이 부모 집에 들어가 ‘더부살이’하는 것과 다름없다. 누구를 위한 서울 편입인지 김포시민들은 꼼꼼히 따져 보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김포시의 서울 편입이 국민의힘 의도대로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한 공약일까?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경기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추진해 왔다. 민관합동추진위원회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해 왔고, 경기연구원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미래비전을 발표했다. 김포시는 논의과정에서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의 일원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 김포시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기도의 입장인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거진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에 경기 북부지역 유권자들이 여당에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김포시를 얻고 나머지 경기 북부지역을 잃을 수 있다. 또 서울을 확장하는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지역소멸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 비수도권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선의 전선이 ‘김포시 대 경기 북부지역’, ‘수도권 대 비수도권’으로 확대돼 여당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정치공학 게임에서 민주당이 미온적인 것은 의아하다. 이른바 ‘부자 몸조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 사기극”이라고 정부·여당을 호통치는 김동연 지사에게 결연함이 엿보인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단식으로 쟁취한 지방자치와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토대 위에 이어져 왔다. 강한 야당의 모습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안타깝다.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은 정부·여당의 ‘소탐대실’로 끝날 것 같다. 지혜로운 국민 앞에 더 이상 ‘꼼수정치’는 통하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대한민국의 백년을 설계하는 정치인들의 마음가짐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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