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일감몰아주기 지시·관여 드러났다면 총수일가 고발 당연"

이희경 2023. 11. 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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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재계 의견을 수용해 사익편취 행위 관련 고발지침 개정안을 재검토하기로 한 가운데 민변과 참여연대가 재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개정안은 일감 몰아주기를 한 법인을 공정위가 고발할 때 이에 관여한 총수 일가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데, 이러한 원안이 사법적 해석 및 사회적 요구에 부합할 뿐 아니라 건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는 공정위의 고발지침 개정안이 당초 원안대로 후퇴 없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8일 의견서를 제출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19일 공정거래법 고발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특수관계인(재벌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의 행위(사익편취 행위·일감 몰아주기)가 중대해 해당 행위를 한 사업자(법인)를 공정위가 고발하는 경우, 이에 관여한 특수관계인도 원칙적으로 고발하도록 규정했다.

개정안이 발표된 이후 재계는 이례적으로 반발했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6개 단체는 해당 지침이 법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해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치는 것이 인정돼야” 특수관계인을 고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상위법(공정거래법)에 반하고, 지침의 고발요건 역시 추상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고발요건 완화는 경제형벌을 완화하고, 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진 윤석열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다며 “전면 재검토”를 공동건의했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 6일 경제단체와 간담회를 가진 뒤 개정안을 수정·보완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원안을 고수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재계 의견을 받아들여) 전향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변과 참여연대는 의견서를 통해 재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변 등은 우선 일감 몰아주기 사건으로 법인이 고발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그 자체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상위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이번 고발지침 개정이 태광그룹 계열사의 김치·와인 일감몰아주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례 취지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에서 재판부는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특수관계인의 이익제공행위에 대한 ‘지시’ 뿐만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는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묵시적으로 승인했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민변 등은 아울러 일감몰아주기 행위의 특성상 총수 일가에 대한 엄중한 법의 심판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총수와 총수 일가는 사익편취행위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부당한 행위를 할 동기가 강한 반면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 동일인과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가 없다면 일감몰아주기 사건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들어 민변 등은 “사익편취를 위해 부당한 지시·관여 행위를 한 것이 드러날 경우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간 사익편취 행위를 적발해 제재하고 법인을 고발한 다수 사건에 총수 일가가 고발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등 고발 지침 개정 필요성도 충분하다고 민변 등은 밝혔다. 민변 등은 “예컨대 총수 일가 개인회사가 운영하는 골프장·호텔에 미래에셋이 일감을 몰아준 사건, 삼성 총수일가의 캐시카우였던 삼성웰스토리에 대한 삼성 계열사의 사내급식 일감을 몰아준 사건, 자회사가 생산한 재료를 과다계상된 가격산정방식으로 구매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건 등 경우 사적 이익을 얻은 주체는 분명했지만 동일인 및 특수관계인은 고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민변 등은 이와 함께 고발지침 개정이 건강한 시장경제 질서 확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민변 등은 “과거 사례는 사업 기회를 박탈당한 중소기업 등 회사의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손해를 입힌 동일인, 특수관계인 등에 대한 법의 집행과 심판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경제사범에 대한 동일하고 엄중한 법 적용을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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