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꼰대’ 인요한, ‘하버드 싸가지’ 이준석 [권태호 칼럼]
머리 아픈 환자한테 다리에 연고 바르는 처방을 내린 건 아닌가. 디스크 수술 환자한테 파스 붙이면 된다 하는 건 아닌가.
정치 문외한에게 “우리 정당을 혁신해주십시오”라고 맡기는 자체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난센스다.
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지난 4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의 부산 토크콘서트장 맨 앞자리에 앉은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쏘아붙이는 장면을 영상으로 봤다. ‘인간적 모멸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중간에 영어식(?) 키득키득 웃음까지 더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60년 이상 한국에 살며 한국 국적도 취득했고, 유창한 한국어에 4대째 한국 사랑을 이어온 그에게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영어로 “미스터 린튼”이라 칭한 건 ‘당신이 아무리 한국인 행세를 해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배타적 선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인종차별’이라 하는 것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가 “한국계 미국인 2세에게 미국 유력 정치인이 공개 석상에서 한국어로, 그것도 비아냥대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종차별로 그날로 퇴출될 것”이라며 비판했다. 많은 이들이 인용했다. 그러나 ‘미국의 동양인 한국계 2세’와 ‘한국의 백인 미국계 4세’를 동등 비교하는 건 불공정(unfair)해 보인다. ‘백인에게 인종차별(discrimination)이 가능한가’라는 물음도 떠오른다. 이런 식으로 차별을 등거리 양방향으로 확장해도 되는 건가. 파란 눈 인요한 박사는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오며 상처도 입었겠지만,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의 상처와 그 색이 같을까. 그는 소수자지만, 소수자성은 없다. 차별은 마이너리티의 소유여야 할 것 같다.
또 형식이 내용보다 중요할 때가 많지만, 정치적 배경(context)을 소거한 채 한 장면(text)만 진공 상태로 보면 본질이 왜곡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인종차별’ 프레임으로 보면, “좀 서운했어요”라는 인요한은 선량한 피해자다. 그러나 반격이 비상식적이긴 했지만, 영어 발언 이전 상황은 인요한이 이준석을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이 전 대표는 만남을 거절했고 만나려면 ‘사전 정지작업’을 할 것을 요청했지만, 인 위원장은 막무가내였다. 원치 않는 만남을 계속 요구하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진 남의 무대에 불쑥 나타나는 건 보기에 따라선 ‘폭력’이다.
이 전 대표에게 내려진 징계는 ‘증거인멸 교사 의혹 및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2022년 4월21일), 이어 ‘양두구육’ 발언을 문제삼은 ‘당원권 정지 1년’(2022년 10월7일)이다. 발단은 가로세로연구소의 ‘이준석 전 대표 성접대 의혹’ 주장인데, 정작 성접대 의혹은 징계 심의에 회부하지 않았다. 혐의가 사실이면, 정계 은퇴다. 그러나 징계 결정 과정에서 근거와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인 위원장은 혁신하겠다며 ‘대사면’이라 했다가 반발하자 ‘징계 철회’로 바꾸고 ‘대화합’하자 한다. 혁신위원장인지, 통합위원장인지 알 수 없다. 정당의 결정을 철회하려면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마치 ‘복잡한 건 묻지 말고 그냥 없던 일로 하자’, ‘좋은 게 좋은 것’, ‘우리가 남이가’식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 위원장은 근대적 합리성과 개인주의를 바탕에 둔 ‘서양 백인 신사’라기보단 온돌방 아랫목 양반다리한 ‘조선 시골 영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인 위원장은 ‘한국 꼰대 아저씨’의 전형을 다 보여주고 있다. 논리가 아닌 정서로 접근한다. 불리한 대목은 얼렁뚱땅 눙치고 넘어간다. 불쑥 내뱉었다 반발하면 “농담”이라며 안면 바꾼다. “마누라, 자식 빼고” 등 30년 전 유행어를 쓴다. 예의를 지키는데, 강약약강이 몸에 뱄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아니면, 혁신위는 뜨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단은 ‘참패 원인’에서 출발해야 한다. 온 국민이 다 안다. 그런데 “대통령 일 관여는 월권”이라며 선 긋고, ‘영남 중진, 험지 출마’ 꽹과리만 울린다. 솎아내고 ‘용산’·검사 출신이 빈곳에 대거 투하되면 그게 혁신인가, 터 닦기인가.
인 위원장은 7일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뒤, “환자가 약을 먹어야 한다”고 전했다. 환자는 이준석인가, ‘영남 중진’인가, 윤 대통령인가. 지난달 31일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나고선 “젠틀맨”이라 추켜세우면서, 정작 그가 한 말은 단 한마디도 전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유승민은 △윤 대통령의 반성과 당 개입 중단 △대통령실과 당의 수직적 관계 청산 △김기현 체제 개편 또는 전면 쇄신을 이야기했다. 인 위원장은 답하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머리 아픈 환자한테 다리에 연고 바르는 처방을 내린 건 아닌가. 디스크 수술해야 할 환자한테 파스 붙이면 된다 하는 건 아닌가.
따지고 보면, 애초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 문외한에게 “우리 정당을 혁신해주십시오”라고 맡기는 자체가 한국에만 존재하는 난센스다.
논설위원실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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