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 때도 관중 1위→38년 만의 우승 일궈낸 '한신 팬덤'의 힘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1935년 창단한 한신 구단은 지금까지 리그 우승 10회와 일본시리즈 우승 2회(1985, 2023년)를 차지했다. 하지만 한신은 팀 역사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면 늘 성적이 아쉬웠다. 특히 리그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던 1993년부터 2002년까지는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이 기간에도 한신은 센트럴리그 6개 팀 가운데 관중 수에서 늘 2~3위 자리를 차지했고 중계권료 수입에서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은 부동의 2위를 차지했다. 팀 성적이 향상됐던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한신은 센트럴리그 최다 관중 동원 팀이 됐고 이후에도 같은 리그 라이벌 팀인 요미우리와 치열한 흥행 경쟁을 펼치며 리그 관중 수에서 1~2위를 오갔다.
이런 흐름은 리그 3위를 차지했던 지난해에도 계속됐다. 2022년 한신의 홈 구장에서 펼쳐진 경기의 평균 관중 수는 3만 6370명이었다. 리그 우승을 차지한 올해 한신의 홈 평균 관중은 4만 1064명으로 더 늘어났다. 두 시즌 모두 일본 프로야구 팀 가운데 1위였다.
먼저 한신에 대한 팬들의 자부심을 들 수 있다. 한신 타이거즈는 일본 프로야구 구단 가운데 최초로 모기업이 홈 경기장을 소유한 팀이다. 모기업인 한신 철도는 1924년 고시엔(甲子園) 구장을 설립했고 1935년 오사카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팀을 창단한 뒤부터 이 경기장은 타이거즈의 홈 구장이 됐다. 고시엔 구장은 일본의 여름철 전국고등학교 야구대회가 펼쳐지는 고교야구의 성지(聖地)이자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간사이(關西) 지역 야구 문화의 중심지가 된 셈이다.
하지만 고시엔 구장의 역사성만으로 한신 타이거즈의 팬덤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팬덤의 중심에는 '안티 교진(巨人)'의 정서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티 교진은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구단 요미우리에 대한 일본 야구 팬들의 반감을 뜻한다. 요미우리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일본 프로야구 9연패를 이룩하는 등 그 자체가 일본 프로야구의 역사라 할 수 있는 팀이다. 야구 선수를 꿈꾸는 대다수의 일본 유소년들의 목표는 요미우리에 입단하는 것이었으며 대다수 일본 야구 팬들도 요미우리를 응원했다. 요미우리의 전성시대는 일본 경제가 수직상승했던 번영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한신이 꿈에 그리던 일본야구 정상에 처음으로 오른 1985년 이들의 요미우리에 대한 반감은 최대치에 달했다. 당시 센트럴리그 1위를 달리고 있던 한신에는 외국인 홈런 타자 랜디 바스(69)가 맹활약하고 있었다. 바스는 정규시즌 2경기를 앞두고 54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었다. 남은 두 경기의 상대 팀은 요미우리였다.
요미우리의 전설적인 홈런타자 오 사다하루(왕정치·83)는 1965년 55개의 홈런을 쳐냈고 이는 일본 프로야구의 한 시즌 최다 기록이었다. 그래서 요미우리는 필사적으로 바스의 홈런포를 막아야 했다. 요미우리 투수진은 이를 위해 바스와 정면 승부를 피했다. 고의사구를 내주기도 했다. 당시 요미우리의 감독이었던 오 사다하루는 "고의사구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중에 요미우리 투수 코치가 바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말라는 지시를 한 사실을 알려져 한신 팬들의 공분을 샀다. 비록 바스는 기록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한신은 이 해에 첫 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
정말 이와 같은 경제효과가 발생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한신의 우승이 일본 사회에 이렇게 큰 사회·경제적인 파급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은 팀이 3위를 차지해도 홈구장을 가득 메우는 강력한 팬덤에서 출발했다. 그래서 한신의 우승은 무엇보다 37년 동안 팀의 '우승 가뭄'을 기다려 준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에서 찾아야 한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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