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 부는 한국어 공부 열풍…쏟아지는 인재, 어떻게 품을 것인가

손우성 기자 2023. 11. 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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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 자와할랄네루대 한국어과 학생들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회화 수업을 받고 있다. 손우성 기자

인도에 한국어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수도 뉴델리에 있는 국립 자와할랄네루대(네루대) 한국어과엔 10만명 이상이 지원해 무려 33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뉴델리 주재 한국문화원에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인도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인도의 한국어 사랑은 영화, 드라마, 음악 등 한류 인기와 무관치 않다. 2020년 최악의 코로나19 피해를 겪은 인도에선 역설적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급성장했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국 콘텐츠가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어 열풍이 한때 지나가는 유행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한국어를 습득한 인도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14억명 이상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 시장을 공략할 장기적인 전략을 한국 정부가 수립할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니자 사마즈달 인도 네루대 한국어과 학과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손우성 기자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네루대 한국어과 사무실에서 만난 니자 사마즈달 학과장은 “개강한 지 한 달 정도 됐지만, 아직도 한국어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는 학생들이 많다”며 “전과를 문의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전엔 주로 학술 목적으로 한국어를 전공했다면, 지금은 한류 인기로 생긴 관심으로 한국어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네루대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한국어 학사와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갖춘 학교다. 1975년 단순 수료 과정 코스로 시작된 이 대학의 한국어 교육과정은 1996년 학사 신설로 이어졌고, 2013년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설립되면서 남아시아 최대 한국어 인재 양성소가 됐다. 내년부턴 기존 3년 과정이었던 학사를 4년으로 늘려 문법과 말하기 등 기초를 더욱 탄탄하게 가르칠 계획이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의 연구 주제도 다양하다. 라훌 쿠마르는 “한국어와 힌디어의 언어 장벽이 번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소설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주요 콘텐츠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북한과도 수교를 맺고 있는 특성상 북한 문학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시마는 “텍스트를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수준이 높은 북한 작품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북한에서 직접 자료를 구하기 힘든 만큼 한국 통일부 등이 보유한 논문과 서적을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어 필기로 가득 찬 네루대 한국어과 학생 노트. 손우성 기자

인도에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배경엔 인도 정부의 정책이 한몫했다.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는 인도는 2020년 고교 제2외국어 선택 과목에서 중국어를 제외하고 한국어를 포함했다. 사마즈달 학과장은 “지난해와 올해 입학한 학생을 보면 확실히 새로운 고교 과정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고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인재 양성 프로젝트도 최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류 인기는 한국어 학습 열풍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2006년 드라마 <대장금>을 인도로 수입해 방영한 두르다샨TV의 깐짠 빠트사드 프로그램 헤드는 “인도와 한국은 정서가 비슷하다”며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를 중시해 이질감이 없고, 인도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뭄바이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인도 최대 연예 미디어 플랫폼 핑크빌라에서 지난달 25일 만난 인도 배우 아누쉬카 센도 “인도는 지역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데 이는 역동성을 불러일으킨다”며 “한국도 인천과 제주도의 모습이 다르지 않나. 인도인들이 한국을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또한 ‘한국과 인도 문화를 통합하는 독특한 유사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도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고대부터 이어진 문화적, 역사적 유대 관계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인도 네루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된 한국어 관련 서적. 1970년대 책들이 주를 이룬다. 한 한국어과 학생은 “더 많은 서적과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우성 기자

하지만 한국어를 전공한 학생들이 졸업 후 마땅한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 사마즈달 학과장은 “인도인은 기본적으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며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 또한 대부분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서 인도 학생들은 한국어 이상의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뉴델리 현지에서 만난 한국 기업 관계자도 “한국어 실력보단 컴퓨터공학 또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인도 학생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며 “오히려 영어로 소통할 때 실수가 적게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네루대 한국어과 졸업생 가운데 극소수만이 한국 기업 인턴으로 경험을 쌓는 실정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와 한국문화원 등에서도 인도 현지인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쏟아지는 한국어 실력자를 품기엔 역부족이다.

인도 네루대 한국어과 사무실 간판. 손우성 기자

이에 네루대는 내년부터 복수전공을 허용해 한국어과 학생들이 다양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사마즈달 학과장은 “한국어를 배우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다”며 “한국어 실력에 더해 다양한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올해 인도와의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국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 잘가온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푸네의 한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라짐 쿠마르는 “아직 인도에선 공대나 의대를 지망하는 학생이 절대다수”라며 “영어만 유창하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다른 언어를 익힐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방탄소년단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생긴 건 맞지만, 양국 관계가 그 이상의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뉴델리 출신 한 인도 경제인은 “한국 정부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인도에서 부는 한국어와 한류 열풍을 어떻게 한국이 흡수할 수 있을지, 경제적으로 어떤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인도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뉴델리·뭄바이 |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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