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시가전 공식화…백기 들고 목숨 건 피란길

김서영 기자 2023. 11. 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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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부레이지 난민촌에서 피란길에 오른 주민이 총격을 피하고자 흰 깃발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포위를 이어간 끝에 시가전 개시를 공식화했다. 빵집까지 모두 사라진 가자지구 북부에서 주민들은 백기를 들고 목숨 건 피란길에 올랐다. 그러나 휴전과 교전 중지를 위한 논의는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7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TV 생중계로 “이스라엘군이 지금 가자시티 심장부에 있다. 병력은 북부와 남부에서 가자지구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보로, 또는 장갑차와 탱크 등을 타고 공병들과 함께 전진하고 있다”며 “테러리스트와 기반시설, 지휘관, 벙커, 통신소 등을 향해 가고 있으며 가자지구 주변에서 올가미를 죄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베나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TV 연설에서 “가자시티는 포위됐다. 우리 군이 그 안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지점까지 이르고 있다”며 “테러리스트 수천명이 지상과 터널에서 제거됐으며, 지상작전을 통해 하마스 지휘부와 진지 등 다수를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작전을 벌이고 있는 구체적 위치를 공개한 적이 없다. 이날 국방장관과 총리의 연이은 발언은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시가전을 사실상 공식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자시티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로 꼽는 가자지구 최대 도시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 수장 야히야 신와르를 쫓고 있다. 신와르는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을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갈란트 장관은 신와르가 “벙커에 숨어 있으며 동료들과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이날까지 가자지구 내에서 하마스 관련 목표물 1만4000곳 이상을 타격했고 지하터널 입구 100곳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하마스 거점으로 지목된 알샤티 난민촌 외곽에서 하마스와 교전을 벌였다. 다만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의 발표가 거짓이라고 반박했으며, 자신들 또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로켓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백기 들고 목숨 건 피란길
이스라엘군이 7일(현지시간) 제공한 사진에서 한 군인이 가자지구 내 지상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상전이 격렬해지며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은 목숨을 건 피란길에 올랐다. 주민 수백명이 가자시티를 떠나 남부로 향했으며, 이스라엘 탱크를 지날 때는 백기를 흔들었다고 AP는 전했다. 일부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왔으나 대부분은 도보로 나섰다. 휠체어를 탄 노인을 미는 이도 있었다. 옷가지만 겨우 챙겨 나온 이들은 모두가 눈에 띄게 지친 상태였다.

남부에 도착한 한 주민(27)은 “이스라엘군이 우리를 겁주기 위해 총격을 가했으며 가자시티 외곽 길가에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도 “탱크에서 우리 주변으로 발포했다. 통행을 허락받기 전 군인들이 손을 들고 백기를 흔들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민 상당수는 여전히 북부에 남았다. 가자지구 내무부는 7일 기준 90만명이 남았다고 밝혔으며, 미국의 중동인도주의 특사는 최소 35~40만명이 남아있다고 추정했다. 남은 이들은 피란민이 몰린 남부로 간다고 한들 물과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며,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알샤티 난민촌에 사는 한 주민은 “내 두 다리로 걸으며 죽고 싶지 않다. 죽더라도 길거리보단 집이 낫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는 하루가 다르게 민간인이 살기 어려운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7일 현재 북부에서 운영 중인 빵집은 단 한 곳도 없다. 유엔은 “가게가 파괴된 데다 연료와 물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북부에서는 이제 시중에서 밀가루를 구할 수 없다”면서 “구호단체조차 지난 7일 동안 음식을 제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남부 지역에선 빵집 9곳이 운영 중이긴 하나, 이조차도 연료와 밀가루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가동된다.

가자시티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은 매일 공격에 노출되고 있다. 7일 밤에도 알시파 병원 인근에 강한 폭격이 가해졌으며 조명탄이 병원 상공을 밝혔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병원의 태양광 패널도 파괴됐다. 민간인 수만명이 알시파 병원에 피신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이 병원 지하에 하마스 본부가 있다고 보고 있어 앞으로는 병원 또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가자시티 의료시설에 필수 의료품을 전달하던 호송대가 운송 도중 공격을 받아 트럭 2대가 파손되고 운전자가 다쳤다고 밝혔다. ICRC는 “인도주의 구호 인력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우리는 민간인을 긴급히 지원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이를 보장하는 건 국제인도법에 따른 의무”라며 공격 중단을 촉구했다.

“네타냐후, 미국 ‘교전 중지’ 제안 거절”
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마차를 타고 남부로 피난을 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구호 활동을 위해 휴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나, 현재로선 휴전이나 교전 중지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인질 석방을 위해 사흘간 교전을 중단하라고 제안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6일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하면서 ‘사흘 동안 교전을 멈추면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인질을 석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로 설득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최근 미국은 ‘인도적 교전 중지’ 대신 ‘전술적 교전 중지’라는 표현으로 이스라엘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앞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교전 중지 제안 또한 거절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과거 사례로 볼 때 하마스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도 갈란트 장관은 “나에게 있어 최우선은 짐승들에게 잡혀 있는 인질들이다. 인질 석방 없이 인도적 정전은 없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다니엘 하가리 소장 또한 “전쟁은 길어질 것이며 앞으로 갈 길이 멀다. 테러리스트들은 휴전을 말하지만 휴전은 없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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