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수술 못 하는데,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체외순환사의 현실
정심교 기자 2023. 11. 8. 16:16
[인터뷰] 배성진 대한체외순환사협회장
흉부외과에서 심장과 폐를 수술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중 하나가 '체외순환사'다. 수술을 위해 심장박동을 멈춰 세우고, 심장을 대신해 피를 전신으로 보내는 체외순환기를 이들만 다룰 수 있어서다. 전국의 체외순환사는 226명(지난해 기준).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체외순환사가 정식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체외순환사들은 최근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 이후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 25년 차 체외순환사인 배성진(49·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대한체외순환사협회장을 만나 체외순환사가 직면한 현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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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법이 왜 두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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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체외순환사가 정식 직종이 아니다. 심장·폐를 수술할 때 체외순환사가 보통은 2명, 적게는 1명 들어가야 한다.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 이후 체외순환사들은 위축된 채 일하고 있다. 다행인 건지 아직은 이 법이 구체화하기 전이어서 환자·보호자가 수술 당시 영상을 요구해도 '체외순환사가 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병원이 제공할 의무는 없다. 아마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체외순환사가 찍히지 않은 영상을 제공할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수술 도구를 찍거나, 수술 모니터를 찍은 영상을 제공해도 법적으로 문제없다. 수술 집도의도 자기를 보호해야 하는데, 법적으로 규명되지도 않은 사람(체외순환사)이 CCTV 영상에 나온다면 누가 유리하겠는가. 이의를 제기하는 환자·보호자가 당연히 더 유리할 것이다. 어쨌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체외순환사 입장에선 CCTV 설치 이후 심리적으로나 행동 측면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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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흉부외과 의사 수가 줄고 있는데 영향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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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부외과 의사가 있어도 체외순환사가 없으면 심장·폐를 수술할 수 없다. 흉부외과 의사가 없으면 체외순환사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한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흉부외과 의사 수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미 일부 병원은 흉부외과 의사가 없어 심장 수술 프로그램을 아예 없앴다고 한다. 이런 경우 체외순환사는 더는 해당 병원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다. 보통은 체외순환사가 필요한 다른 병원으로 이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체외순환사에 대한 인건비다. 현재 체외순환사가 정식 직종이 아닌 탓에 체외순환사의 의료 행위에 대한 수가가 책정돼 있지 않다. 심장 수술 프로그램을 접게 된 병원 입장에선 이미 채용한 체외순환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기존의 직종 업무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있다. 지난해 기준, 체외순환사의 기존 직종을 보면 간호사 출신이 62.9% 의료기사(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등) 출신이 34.8%다. 예컨대 "원래 간호사였으니 병동에서 간호 업무를 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사직서를 내겠다는 체외순환사가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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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현재 체외순환사의 업무량은 얼마나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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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진행한 심장혈관 질환 수술 건수(소아 포함)는 9만6995건으로, 체외순환사 1명이 1년에 210~220건을 맡는다. 한 달 평균 18건이다. 에크모(ECMO) 업무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많은 업무에 시달린다. 미국의 경우 심장혈관 질환 수술을 담당하는 체외순환사들이 연평균 1인당 109건(2005년 기준)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 체외순환사가 미국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셈이다. 대한체외순환사협회에 등록한 체외순환사는 지난해 기준 226명으로 2016년부터 늘지도 줄지도 않은 채 정체됐다. 문제는 에크모 가동 건수가 늘고 있고, 코로나19 범유행 이후 에크모 가동이 급증했지만 체외순환사는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체외순환사가운데 10년 이상 경력자가 53.3%이고, 5~10년 경력자가 27.7% , 5년 이하가 18.7%다. 새로 유입되는 체외순환사가 적다. 고령화로 심장 수술은 지금보다 많아질 텐데, 심장 수술에 투입될 체외순환사가 정체되고 있다는 건 1인당 맡을 수술 건수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체외순환사를 1명 배출하려면 3~5년 걸리므로 향후에 많아질 심장 수술에 대처하기 위해 체외순환사를 지금보다 더 많이 배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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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체외순환사가 없거나 부족한 곳도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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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수술당 체외순환사 2명이 들어가야 하지만 병원에 체외순환사가 1명밖에 없어 1명만 들어가는 곳도 일부 있다. 이런 경우 수술 한 건당 보통 10시간(짧게는 8시간, 길면 14시간) 이어지는데, 체외순환사가 1명만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수술 내내 화장실도 못 가고 꼬박 일해야 한다. 너무 가혹하다. 일부 병원에선 체외순환사가 없어, 타 병원 체외순환사들에게 도움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면 타 병원 체외순환사가 시간이 되면 프리랜서처럼 파견 근무하고, 하루 20만~40만원 수당을 받는 식이다. 이런 경우 예정된 '정규 수술'만 가능할 뿐, 응급 수술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체외순환사가 부족하면 결국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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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의사나 다른 인력이 체외순환 업무를 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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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다.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책임 소재도 있다. 한 번 체외순환을 잘못하면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넣어주는 혈액 속에 공기가 들어가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갑자기 크게 떨어진다. 머리로 올라가면 혈관이 막힐 수 있고, 다른 장기로 가면 그 장기의 기능이 확 떨어진다. 이럴 경우 환자는 심장 수술 도중에도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고, 수술이 잘 끝난 후 중환자실을 나와도 몇 시간 만에 나빠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수술 내내 모든 바이탈이 체외순환사에 달려 있다. 집도의는 체외순환사를 믿고 심장 수술을 집도한다. 심장 수술을 잘 끝내고 중환자실을 나온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확 나빠지면 집도의가 체외순환사에게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자칫 환자가 잘못되면 체외순환사가 응급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해서인 것으로 여겨서다. 환자 상태가 나빠진 원인을 찾을 수 없더라도 '체외순환하면서 문제가 없었느냐'는 식으로 집도의가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집도의들이 경험이 풍부한 체외순환사와 일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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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정식 직종이 아닌데, 교육은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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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체외순환사 대부분은 심장 수술을 담당하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체외순환사의 업무를 옆에서 직접 봤거나, 이들의 업무를 전해 듣고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워낙 전국에 체외순환사 수가 적다 보니 입소문으로 알려지거나, 학술대회 논문 등을 통해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 '알음알음' 정보를 얻는다. '심장 수술 때 체외순환사가 보람 있게 일하더라'라는 소문을 듣고 '이 일 배워보고 싶다'고 병원 측에 의사를 표하고, 그 병원도 체외순환사가 필요할 때 체외순환사가 있는 다른 병원으로 해당 직원을 파견해 교육하는 식이다. 너무 주먹구구식이다. 지원자들은 당연히 정식 직종인 줄 알고 있다. 체계적으로 교육해 체외순환사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기 위해서라도 체외순환사를 정식 직종으로 인정해야 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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