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 간염, 간암 예방 위한 치료 적기는 ‘이때’
국내 사망 원인 1위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암'. 그중에서도 간암은 폐암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은 병이다. 국내 간암의 70% 이상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기인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가 지속되면 만성간염을 거쳐 간경변증, 그리고 간암에 이를 수 있다.
현재 B형 간염 약제는 간암 위험을 절반으로 낮춰주지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건강보험 급여기준이 간 수치가 크게 상승했을 때로 제한돼 있다. 이에, 국내 환자 중 약 18%만이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간 수치가 아닌 바이러스 수치에 근거해 B형 간염 치료를 시작해야 간암 발생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향후 국내∙외 B형간염 치료지침 및 건강보험 급여기준 개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치료기준 바꾸면 간암 발생 1년에 약 3천 명 예방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임영석∙최원묵 교수팀은 국내 5개 대학병원의 만성 B형 간염 환자 9,709명을 대상으로 간암 발생 위험을 수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간수치가 정상이라도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간염 치료를 조기에 시행한다면 간암 발생자 숫자를 최대 6분의 1로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B형 간염 치료를 시작한 성인 환자 4,693명을 평균 7.6년간 추적 관찰했는데, 그 가운데 193명에서 간암이 발생했다. 반면 간염 치료를 받지 않은 5,016명 중에서는 322명에게서 간암이 발생했다. 이로 비추어 볼 때 간염 치료는 간암 발생 위험을 전체적으로 약 5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치료군과 비치료군 모두에서 바이러스 수치가 혈액 1mL 당 1백만 단위(6log10 IU/mL)인 경우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높았다. 심지어 해당 환자들은 장기간의 간염 치료 중에도 간암 발생 위험도가 50% 정도 낮아질 뿐 여전히 가장 높은 위험도를 유지했다. 반면 바이러스 수치가 1백만 단위에서 멀어질수록, 즉 매우 적거나(1만 단위 미만) 매우 많은(1억 단위 이상, ≥8 log10 IU/mL) 환자들은 간암 발생 위험이 가장 낮았다.
종합하면 바이러스 수치가 1억 단위 이상에서 치료를 개시한 환자들에 비해 1백만 단위에서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의 간암 발생 위험은 최대 6.1배나 높았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바이러스 수치에 비례해 간암 발생 위험이 선형적으로 증가하고, 간염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바이러스 수치가 간암 발생 위험과 연관이 없다고 여겨왔다. 이러한 배경에서 현재 B형 간염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바이러스 수치가 최소 2,000 단위 이상이면서 간수치(AST 또는 ALT)가 정상 상한치의 2배(80IU/L) 이상이어야 한다. 즉, 혈중 바이러스 수치가 높아도 간수치가 정상이면 치료를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연구팀은 간암을 잘 예방하기 위해서는 바이러스 수치가 매우 높을 때(1억 단위 이상, ≥8 log10 IU/mL) 또는 상당히 낮을 때(1만 단위 미만) 간염 치료를 개시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임영석 교수는 “매년 국내에서 약 1만 2천 명의 간암 환자가 새롭게 진단되는데, 대부분 중년 남성이다 보니 심각한 사회경제적 손실과 가정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며 “혈중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가 2,000 IU/mL 이상인 성인 환자는 간 수치와 상관없이 간염 치료를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면 1년에 약 3천 명, 향후 15년간 약 4만여 명의 간암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B형 간염 치료시기를 간염 바이러스 수치를 기준으로 단순화하고 앞당길 경우, 간암 발생을 예방함으로써 사회적인 비용 부담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도 이미 입증됐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소화기분야 최고 권위지인 ‘거트(GUT)’ 온라인판에 최근 게재되었다.
예방접종받고, 간 검진 꾸준히 해야
B형 간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며,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백신 접종이다. B형 예방접종은 모든 신생아 및 영아에게 생후 0, 1, 6개월 일정으로 3회 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만약 어릴 때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중장년층이라면 꼭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백신 투여 후 체내에 항체가 형성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B형 간염 보균자인 경우 꾸준한 간 검진이 중요하다. 간암은 초기에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정기적인 검사를 하지 않으면 조기에 발견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만 40세 이상이면서 B형, 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인 간암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국가 암 검진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잇다. 대상자는 6개월마다 간 초음파 검사와 혈청알파태아단백검사를 받는 것이 권장된다.
김가영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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