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나'의 수지가 '건축학개론'의 수지와는 다른 까닭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넷플릭스 드라마 <이두나>는 대학생 이원준(양세종)과 아이돌 출신 이두나(수지) 사이에 오가는 사랑의 감정을 그려낸다. <이두나>에서 이원준은 사랑에는 객관식 정답이 있다고 믿는 평범하고 건실한 7의 남자, 아니 다정하고 훈훈하기까지 하니 '괜춘'한 9의 남자 정도 된다. 그런데 그에게는 남자가 발산하는 위험한 매력은 없다. 한 여자를 단숨에 사로잡아버리는 매력. 하지만 그 매력은 때론 위험한 덫이 된다. 여자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원준은 언제나 또래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행운의 남자다. 은은하게 풍기는 섬유유연제 냄새처럼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남자 같으니까. 단 영혼까지 털어가는 위험한 매력을 갖춘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때문에 <이두나>의 주인공 이두나를 비롯 김진주와 최이라는 모두 이원준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다. <이두나>는 이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최원준에게 갖는 감정과 그 감정선을 숨겼다가 다시 드러내는 부분을 꽤 잘 그려낸다. 그렇기에 <이두나>는 이원준과 김진주(하영), 혹은 최이라(박세완) 사이에 오가는 사랑의 감정을 그렸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기에 이두나와 김진주가 그려내는 여자들끼리의 미묘한 관계도 있다. 별다른 사건 진행 없이도 드라마가 흥미롭게 다가온다면 이런 감정선의 복잡한 꼬임 때문이다.
그런데 <이두나>에서 남자와 여자는 각각 사랑을 다른 식의 문제로 바라본다. 이원준은 생각이 많고 사랑은 객관식이라 생각하는 남자다. 이원준은 사랑이란 여러 사람 중 눈에 들어오는 정답의 번호가 있고, 그 번호를 찍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커플의 여정이 시작된다고 믿는 것이다.
반면 이두나를 비롯한 여성캐릭터들은 사랑은 주관식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과 쌓아가는 감정에 따라 그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고 약간의 밀당을 품은 가벼운 장난이 되거나 그냥 우정이 되는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스쳐가는 인간관계로 끝날 수도 있다. 그들은 사랑의 정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감정의 이끌림에서 이 사람이 내 사람이구나, 라는 믿음이 드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문제는 객관식의 이원준이 주관식의 사랑이 주는 신호를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가는 눈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두나>에서 그의 사랑은 헛발질로 끝나거나 오해로 흔들린다.
<이두나>는 비단 수지가 이두나로 등장해서가 아니라 이원준 때문에라도 영화 <건축학개론>이 떠오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잘생겼고 풋풋하지만 쑥맥인 대학생 남자주인공. 그가 사랑에 대해 경험하는 쓰라린 경험 등이 그렇다. 하지만 <건축학개론>에서 서연(수지)은 승민(이제훈)의 첫사랑의 대상으로만 그려진다.
반면 <이두나>는 남자주인공의 눈으로 여자주인공을 관찰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원준은 9의 남자고 이두나와 김진주, 최이라가 사랑의 감정을 발전시키고 그것을 돌려 말하는 과정에 더 공을 들인다. 또 이 여성캐릭터들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들이 지닌 트라우마까지도 드러내면서, 왜 이들이 편안하고 다정한 남자에게 끌리는지를 설명해준다. 이두나는 수많은 대중의 시선과 독한 사랑에 지쳤으며, 김진주는 부유하지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탈출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9의 남자가 이원준이었다.
흥미롭게도 <이두나>의 주인공 이두나가 아이돌 걸그룹 출신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에서 그렇게 판타지처럼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남자의 세상이 <건축학개론>이라면 젊은 여자의 세상은 <아이돌>의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는 자기가 쌓아가는 커리어의 스펙에 따라 평가받는다. 그가 살아갈 모범적인 인생의 룰 역시 어느 정도 설계의 견적이 나와 있다. 반면 젊은 여자는 <아이돌>처럼 계속해서 타인과 동료에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평가받고 보여지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스펙을 쌓아가려면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굉장히 중요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사하게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 숨은 암울함을 들켜서는 안 된다.
<이두나>가 그저 평범한 로맨스물이라면 여신 같은 이두나와 연인 같고 친구 같은 김진주의 미소만을 보여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두나>는 이두나의 화상 입은 손가락과 발작적인 웃음 뒤에 남은 불안 그리고 김진주의 눈에 스쳐가는 숨기고 싶은 내면의 어두운 풍경까지 카메라에 담는다. 어쩌면 그게 이 드라마가 특별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넷플릭스, 영화 <건축학개론>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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