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發 군비경쟁 '재점화' 양상… 한반도 등 동북아도 영향 불가피
우크라전 발발에 "신뢰 붕괴"… 中 가세 가능성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과거 '냉전' 시기 미국과 서유럽 국가, 그리고 옛 소련(현 러시아) 간의 군비경쟁이 30여년 만에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에 이어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마저 '유럽재래식군사력감축협정'(CFE)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다.
이런 가운데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과 함께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의 안보질서가 요동쳐온 상황에서 각국의 군비경쟁마저 본격화될 경우 그 여파가 동북아시아 및 한반도로까지 확대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탄약 등 물자를 북한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지난 7일 성명을 통해 "CFE 탈퇴 절차를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CFE는 미국 주도의 나토와 옛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1990년 체결한 것으로서 군사력 균형 유지 차원에서 재래식 무기 보유 상한선을 설정한 게 핵심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2007년 CFE가 정한 재래식 무기 범주 등을 놓고 나토와 이견을 보이면서 '이행 유보' 의사를 표명했고, 이후 16년 만에 공식적으로 CFE에서 탈퇴했다.
이에 나토 또한 "동맹국은 준수하고 러시아는 준수하지 않는 상황은 지속 불가능하다"며 CFE의 효력 중단을 선언한 상황. 이와 관련 나토의 맹주인 미국 측은 "러시아가 CFE에서 탈퇴하고 CFE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전쟁이 계속되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며 CFE 중단의 책임을 러시아에 돌렸다.
사실 미국과 러시아가 군비통제·축소에 관한 협정이나 조약을 파기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였던 2019년 러시아의 핵무기 개발·배치가 지속되고 있단 이유로 사거리 550㎞ 이상 핵미사일 배치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참여 중단을 선언했고, 이에 러시아도 곧바로 이 조약 탈퇴 의사를 밝혔다. INF는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했던 것이다.
또 2010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체결했던 핵무기 감축을 위한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도 올 2월 러시아의 참여 중단 선언과 함께 파기됐다. 러시아는 이달 2일엔 미발효 상태인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도 철회했다.
이처럼 각종 군축 관련 협정·조약 등의 파기가 잇따르는 건 미국·러시아 등 각국 간의 불신이 그만큼 심화된 데 따른 결과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유럽에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주요국들의 군비증강이 이미 시작된 상황이다. 일례로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는 우리 방산 기업들로부터 자주포·전차·경공격기 등을 대규모로 도입하기 위한 계약을 맺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러시아와 미국의 CFE 탈퇴는 냉전체제 후반기에 성립됐던 군비통제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붕괴됐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미·러 간 군비통제·축소 관련 협정·조약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었던 점도 그 '수명 단축'의 한 요인이 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외교·안보·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이에 미 정부가 나토의 역할·기능 확대, 이른바 '나토의 동진(東進)'을 추구해온 것 또한 '잠재적 위협'인 중국을 견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유럽발 군비경쟁 심화가 아시아권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도 북한 및 중국 등과의 군사적 연대·협력 강화를 모색해온 상황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일본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및 도발위협에 맞서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탈(脫)냉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던 CFE 등을 통해 유럽의 평화가 긴 시간 유지돼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함께 유명무실해졌다"며 "앞으로 군비통제보다는 경쟁이 더 격화될 것이다. '힘에 의한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기가 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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