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활판인쇄 매력으로 중편소설 명작 33편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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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이상 된 낡은 인쇄 기계가 고장 나면 을지로에 가서 부품을 새로 만들어 와 갈아 끼우면서 겨우 인쇄했지요."
활판인쇄라는 전통 인쇄방식으로 세계문학 작가 33명의 중편소설(노벨라)를 엄선해 찍어낸 한정판 전집 '노벨라33'을 기획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58)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중편소설 선집을 기획한 것도 활판인쇄를 채택한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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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활판인쇄기로 반년간 600만쪽 찍어…"새겨넣듯이 찍어내 반영구적"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100년 이상 된 낡은 인쇄 기계가 고장 나면 을지로에 가서 부품을 새로 만들어 와 갈아 끼우면서 겨우 인쇄했지요."
활판인쇄라는 전통 인쇄방식으로 세계문학 작가 33명의 중편소설(노벨라)를 엄선해 찍어낸 한정판 전집 '노벨라33'을 기획한 다빈치 출판사 박성식(58)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8일 연합뉴스에 "활판인쇄가 대단히 많은 장점에도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사장돼버려 늘 안타까웠다"면서 "이번 기획으로 우리의 인쇄와 출판문화를 반성해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노벨라33'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출판사 다빈치가 공동기획·제작해 1천 세트를 알라딘에서 한정판매 중인 중편소설 선집이다. 세르반테스, 카프카, 이디스 워튼, 조지 오웰, 루쉰 등 고전의 반열에 오른 중편소설 33편을 양장본에 담았다.
이 선집을 찍어낸 방식인 활판인쇄는 활자가 새겨진 인쇄판을 종이 위에 직접 눌러 책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 형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1980년대 들어 컴퓨터 조판과 잉크를 뿌리는 방식인 '오프셋' 인쇄 등에 밀려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박 대표는 활판인쇄로 선집 출간을 고민하다 파주활판공방에 남아있는 100년 이상 된 오래된 활판인쇄기 두 대를 찾아냈다. 제작에는 활판인쇄의 명맥을 잇고 있는 권용국(89), 김평진(74) 장인이 참여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제작 기간을 처음엔 4개월 예상했지만, 낡은 인쇄기의 부품이 고장 나면 서울 을지로까지 나가 부품을 새로 제작하면서 작업하느라 인쇄에 두 달이 더 걸렸다. 그렇게 낡은 인쇄 방식으로 찍어낸 노벨라 33의 분량은 전체 600만쪽이 넘는다.
현행 오프셋 인쇄는 잉크 자체를 스프레이처럼 뿌리는 방식이라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날아가 변색되지만, 활판인쇄는 잉크의 점성이 강하고 잉크를 '새겨 넣듯이' 찍어내는 방식이라 글자가 선명하고 책이 반영구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박 대표가 세계적인 작가들의 중편소설 선집을 기획한 것도 활판인쇄를 채택한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단편과 장편의 중간 길이인 중편소설은 한국의 소설 시장에서 설 자리가 거의 없지만, 서구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벨라'(Novella)라고 불리며 단편과 장편에 못지않은 입지를 가진 장르다.
"'노벨라'가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르인데, 우리 문단이나 출판계에서도 단편이나 장편만 말하고 중편에 대해선 거의 얘기를 안 하거든요. 종이책으로 만들기에 분량이 어중간해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랬지요. 저는 단편과 장편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중편이 21세기에 부활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집에는 여러 차례 번역돼 널리 알려진 고전 외에도 발자크의 '공놀이하는 고양이 상점'처럼 국내 초역이거나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의 그림자', 체호프의 '결투' 등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담았다.
박 대표가 2000년 설립한 다빈치는 '클림트, 황금빛 유혹', '만화 서양미술사' 등 예술·인문서들을 펴냈다. 이번 선집은 곧 은퇴하는 그에게는 출판업자로서의 마지막 야심작이다.
"저는 출판 인생 전체를 컬러 인쇄에 바쳤습니다. 어떤 종이에 어떤 잉크로 어떻게 찍으면 색을 더 잘 재현하고 구현할 수 있는지에 몰두했지요. 그런데 결론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된 활판인쇄더군요. 이 기획을 시작할 때부터 제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벨라33'은 알라딘에서 독자 북펀드를 통해 오는 19일까지 1천세트 한정 판매를 진행한다. 판매가 끝나면 인쇄한 활판은 해체해 구매자에게 사은품으로 증정할 계획이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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