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만1천m 바닷속에도 비닐봉지가…신간 '눈부신 심연'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019년 미국의 재벌 모험가 빅터 베스코보는 수십 11㎞까지 잠수해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심연으로 내려갔다. 지구의 가장 깊은 지점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다름 아닌 비닐봉지와 사탕 껍질이었다.
인간이 만든 많은 쓰레기는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아주 깊은 바닷속에도 존재한다.
심해 퇴적물에는 미세 플라스틱도 가득하다.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은 해저 협곡이다. 그곳에서는 플라스틱이 쓰레기 이송 장치에 실린 것처럼 대륙붕 가장자리에서 심연으로 이동한다.
영국 해양 생물학자인 헬렌 스케일스는 최근 번역 출간된 단행본 '눈부신 심연'(시공사)에서 인간의 활동이 크고 깊은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고든다.
심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압으로 인해 연구자가 접근하기 어려우며 연구도 쉽지 않다. 우주 비행사는 한번 나가면 수개월씩 우주에 머물지만 심해 탐사자에게는 한 번에 24시간 이내의 짧은 방문만 허용된다.
달 지도는 오래전에 7m의 해상도로 완성됐지만, 심해저는 가장 정밀한 지도조차 500m 이상의 큰 지형적 특성만 표시된 수준이다.
전업 심해 생물학자로 활동하는 이들은 약 500명으로, 단순 계산하면 이들은 1인당 약 200만㎦의 공간을 연구해야 하는 등 연구 영역도 방대하다.
인간은 싸고 손쉽게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미지의 심해를 오랜 기간 쓰레기장으로 이용했다.
미국 뉴욕 연안의 심해 쓰레기 매립지인 DWD-106은 1992년 폐쇄될 때까지 20년 동안 4천만t의 오수를 받았고, 그 더러운 물이 갈색 기둥 형태로 수 킬로미터나 퍼졌다.
카리브해의 국가인 푸에르토리코는 제약회사가 수심 6천400m 아래에 있는 푸에르토리코 해구에 수십만t의 유독성 폐기물을 버리도록 허가했다.
1970년 산소탱크 폭발로 달 착륙에 실패한 아폴로 13호가 우주 비행사 3명을 태운 채 지구로 돌아올 때 미국 항공우주국(NASA)는 플루토늄 238이 붕괴할 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깊은 수심 1만700m의 초심해대 해구 어딘가에 집어놓도록 유도했다.
이 발전기는 플루토늄 반감기의 열배인 800년 동안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튼튼하게 설계된 안전용기에 들어 있었다. 만약에 대비한 조치였다.
심해는 화학무기를 처리하는 장소로도 활용됐다.
1970년대의 어느 날,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앞바다에서 미국 해군 전함 르바롱 러셀 브릭스 호는 겨자탄, 신경가스 VX, 사린을 포함한 2만4천t 분량의 화학무기를 싣고 바다에 가라앉았다. 미국 국방부은 1964년부터 배에 구멍을 뚫어서 가라앉히는 이런 비밀작전을 실행해 13척의 배를 바다에 버렸다.
브릭스 호 침몰을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고 1972년 미국 해양 투기업이 발효되면서 독성 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 최초로 불법화됐다.
바다는 인간의 착취로 신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슬라임헤드, 혹은 오렌지러피로 불리는 수심 180∼1천800m에서 서식하는 물고기는 저인망어업 기술이 보급되면서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이 물고기는 이상적인 조건이라면 250년까지 서식하며 태어난 지 20∼40년이 지나야 번식을 시작하는데, 20세기 후반에는 그물을 한번 던져 몇 분만에 50t씩 잡아들이는 싹쓸이 어업이 횡행하면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크고 깊은 바다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
바다의 평균 수심은 4천m 남짓이며 태양의 복사열로부터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인간이 방출한 이산화탄소에 갇힌 잉여 열의 90% 이상이 바다에 흡수되며 인류가 배출한 전체 탄소의 3분의 1이 바다로 들어가 기후 위기에서 지구가 버티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수심 1천600m까지의 상층부 수온은 1980∼2010년 사이의 평균 온도보다 0.075도 높았다.
하찮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수온을 높이는 데 필요한 열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36억개 분량과 맞먹는다.
벌목으로 황폐해진 산에 다시 나무를 심어 숲을 살리는 것처럼 바다를 복원하는 것이 이론상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도 앞으로 이 엄청난 공간에서 배우고 발견해야 할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며 바다를 지키고 싶다면 "온 힘을 기울여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조은영 옮김. 416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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