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날아오는 귀한 손님, 일본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한겨레 2023. 11. 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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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겨울진객’ 재두루미 철원평야에 도착
과거 한강하구서 대집단 월동했으나
과도한 개발 등으로 일본으로 이동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재두루미가 철원에 도착했다.

매년 이맘때면 재두루미가 2000㎞의 여정을 시작한다. 번식지인 러시아에서 출발해 중간 기착지인 철원평야를 거쳐 일본 가고시마로 향한다. 그리고 일부는 철원에 남아 겨울을 난다.

지난 10월27일 강원도 철원군을 찾았다. 이곳저곳에서 많은 무리의 재두루미가 눈에 띈다. 주민들은 전날부터 재두루미가 부쩍 많이 보인다고 했다. 본격적인 이동과 월동이 시작된 것이다. 도착한 재두루미들을 보니 어림잡아 1000여 마리가 족히 넘는다.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하고 예민해진 재두루미들의 경계가 심하다.
재두루미가 모여있는 자리가 어수선하다. 낯선 만남은 어색하다 서로를 과시하며 힘겨루기도 한다.

1970년대만 해도 한강 하류와 하구는 재두루미의 세계 최대 월동지였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석탄리, 후평리, 시암리, 파주시 교하면 신남리, 문발리, 신촌리 등 한강 하류 동서 하안과 한강과 임진강이 교차하는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삼각주 일원에 주로 재두루미가 도래했었다.

철원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들은 지정 장소에서 가족단위로 머물기도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논을 올해도 새끼(가운데)를 데리고와 함께한다. 지정 장소에 대한 귀소 본능과 애착심 매우 강하다.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철원평야. 볏짚말이 흰색 곤포 사일리지가 처리돼야 재두루미는 방해 받지 않고 안정을 찾는다.

김포에 재두루미 대집단이 월동했던 것은 당시 주한미군이었던 벤 킹(Ben King) 소위가 1961년 11월 약 3000마리의 재두루미가 월동했다는 사실을 미국의 두루미학자 로런스 윌킨쇼(Lawrence H. Walkinshaw)에게 1973년 구두로 알린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재두루미가 언제부터 한강하구를 찾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안타까운 점은 이제는 이곳에서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이다. 각종 개발, 특히 김포시 하성면 갯벌이 간척되면서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재두루미로서는 월동지를 상실한 것이다.

재두루미 부부. 암컷보다 수컷이 다소 큰 경향을 보인다.
재두루미는 가족의 유대 관계 무리를 형성한다. 새끼는 머리 꼭대기에서 뒷목까지 갈색이다. 첫 번째 새끼 뒤에 있는 재두루미는 작년에 태어난 새끼로 추정된다.
예민한 재두루미는 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반도에 온전한 월동 환경이 남아있다면, 목숨을 걸고 먼바다를 건너 일본에 갈 필요가 없지만 철원을 거쳐 일본으로 향해야 하는 재두루미들은 갈 길이 바쁘다. 먼저 온 두루미들과 나중에 도착한 무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동 행렬이 이어진다.

긴 여정에 지친 재두루미들이 열심히 허기를 채우고 있다.
드넓은 철원평야는 재두루미 소리로 가득하다.
불안하게 보이고 긴장된 재두루미 행동에서 경쟁심이 엿보인다.

지금부터 열흘간 철원평야는 시끌벅적할 것이다. 두루미는 음성과 몸짓 언어가 약 60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척추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의사소통을 하는 종 중 하나로 꼽힌다. 날개를 흔들며 마음껏 수다를 떠는 몸짓,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작은 다툼, 애정과 과시를 뽐내는 춤의 향연이 한바탕 펼쳐진다.

먼 길을 떠나거나 자리를 다시 잡고 앉을 때는 높이 떠서 선회하는 재두루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농경지로 날아드는 재두루미.
자리를 옮기는 재두루미 무리들.

재두루미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행동하고 공동체 생활의 질서를 지키는 새다. 단독 생활을 하던 재두루미들은 무리 생활을 어색하고 낯설어 하기도 한다. 월동을 위해 만나면 서열 정리를 위해 시끄러운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과정은 함께 월동하는 동안 공동체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이른 아침 강가의 잠자리를 떠나 농경지로 향하는 재두루미.
최적의 자리를 찾아 내려앉는 재두루미.
이미 다른 재두루미들이 모여있다.

죽을 때까지 같은 번식 장소와 월동 터전을 정확하게 지켜 생활하는 독특한 습성을 지니고 있다. 가족 사랑도 유별나, 한 마리와 짝을 맺으면 평생 동반자로 살아며 해마다 찾아오는 논에 새끼를 데리고 나타난다. 지난 6월에는 한 재두루미 부부가 번식지로 떠나지 않고 철원평야에 남아있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암컷이 날개 깃에 상처를 입자 수컷이 곁을 지킨 것이었다.

한가롭게 재두루미 부부가 날고 있다.
재두루미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한적한 곳에 있는 이유는 방해 받지 않고 안정성을 유지하며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하기 위해서다. 새끼가 한번 날 때마다 벼 낱알 300개 정도 먹는 열량이 소비됨을 막기 위한 배려가 있다.
재두루미 부부 뒤로 새끼가 뒤따른다.

시베리아 우수리, 몽골, 중국 동북부에서 번식하며 중국 양자강 중류와 하류, 일본 가고시마 이즈미에서 월동한다. 국내에서는 철원에서 대규모 집단이 월동을 하는데 한강하구, 임진강 유역, 김포, 파주, 연천, 여주, 창원 주남저수지, 낙동강 하구, 순천만, 구미 해평습지, 의령군 정곡면 등에서도 소규모의 무리가 관찰된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하는 재두루미.
재두루미 번식지에서는 월동지와 같이 재두루미의 무리를 볼 수 없다. 각자의 번식지와 생활 영역이 정해져 있다.
올해 번식을 못했거나 새롭게 짝을 맺은 재두루미 무리로 보인다.

전 세계 재두루미 생존 집단은 약 6250~6750마리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많은 새들이 한국을 기착지로 삼거나 월동지로 삼는다. 지난 2018년 1월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철원군에서는 재두루미 3689개체가 목격됐다. 일본 이즈미시보다 더 많은 수다.

2022년 일본 이즈미시 두루미박물관 조사에서는 2377마리가 이즈미를 찾은 것으로 조사됐는데, 2013년부터 2022년 10년 이즈미에서 월동한 재두루미의 평균 개체 수는 2842마리였다. 재두루미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오른 취약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왼쪽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것 같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경계를 한다.
농사 차량이 들어오자 재두루미 무리가 바짝 긴장한다.
재두루미의 겨울나기는 여러 가지 방해 요인과 혹독한 추위와 맞서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목격되는 재두루미의 개체 수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것은 매우 희망적인 일이다. 재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잊지 않고 찾아오는 것은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학습 덕이다. 그러나 과거 과도한 개발로 인해 우리나라가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를 바다 건너 일본으로 내몰았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재두루미를 위협하지 않는다면 올해 이곳을 찾은 재두루미는 내년에도, 그 후에도 계속 잊지 않고 이 땅을 찾아올 것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애니멀피플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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