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은행의 발상지 伊, ‘은행 횡재세’ 논란[조은아의 유로노믹스]
사실 이탈리아의 횡재세 도입 방침이 이례적인 건 아니었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체코, 리투아니아, 스페인이 이미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열에 이탈리아가 합류하겠다고 나서자 시장이 바짝 긴장했다. 이탈리아는 세계 10위 경제 규모를 점하고 있는 데다, 국가 부채 문제도 심각해 유럽연합(EU)의 우려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탈리아는 14세기 메디치가문의 은행 등 근대적 은행을 태동시킨 곳이라 더 주목을 끌었다. 근대 은행의 발상지에서 ‘반(反)은행’ 정책이 나왔기 때문이다.
●멜로니 총리 “은행에 40% 횡재세”
원래 유가, 천연가스 값 등 에너지 값이 뛰자 주로 에너지 기업에 부과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금리 장기화로 금융권으로도 횡재세가 번지는 분위기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현지 주요 일간지 공동 인터뷰에서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빠르게 인상했지만 예금 금리는 올리지 않아 왜곡이 발생했다”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그러면서도 “은행을 징벌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반발하는 은행을 다독이려 애썼다.
하지만 시장의 우려는 상당했다. 이탈리아 정부의 횡재세 도입 방침이 공개된 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은행주 지수는 7.3% 급락했다. 유로존 은행지수(SX7E)는 3.7% 하락하며 이탈리아발(發) 금융 불안이 유럽 금융권으로 전이됐다. 횡재세가 부과되면 이탈리아 은행들의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힘 빠진 횡재세, “은행의 승리”
하지만 이런 ‘한발 후퇴’도 역부족이었다. 이탈리아 안팎에선 비판이 터져 나왔다. 멜로니 정부의 연정 파트너인 우파 전진이탈리아당(포르자 이탈리아)은 횡재세 법안을 무력화할 ‘맞불 법안’을 내놓는 등 반대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장녀인 마리나 베를루스코니는 “초과 이익의 정의가 여러 가지 의심과 비판에 노출될 수 있고 매우 선동적”이라며 “은행 횡재세가 외국인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횡재세 도입 발표 다음달인 9월 유럽중앙은행(ECB)마저 횡재세 도입에 우려를 표하며 멜로니 정부는 더욱 난감해졌다. ECB는 당시 은행이 경기 침체 여파에 더 취약해질 가능성을 지적하며 과세 여파를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블룸버그통신은 ECB와 이탈리아 간의 긴장관계가 커졌다고 풀이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ECB에 ‘재정 개혁’ 성과를 평가받고 그 성적에 따라 재정 지원 여부를 통보받던 참이다.
이에 멜로니 정부는 횡재세 법안을 대폭 뜯어고쳐 완화했다. 법 수정안에 따르면 은행이 납부해야 할 세금의 2.5배를 준비금으로 쌓으면 횡재세를 피할 수 있다. 횡재세 상한선은 당초 ‘은행 총자산의 0.1%’로 예상됐으나 이번에 ‘위험가중자산’의 0.26%로 수정됐다. 정부가 상한선을 대폭 낮춘 셈이다.
횡재세 완화로 멜로니 정부는 소란만 키운 채 실리는 챙기질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현금이 풍부한 경제 부문을 (횡재세 부과로) 기회주의적으로 공습함으로써 국가 재정 적자를 줄이려던 멜로니 총리의 희망이 좌절됐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의 한 은행 임원은 폴리티코에 익명을 요청하며 “법 전체가 바뀌었다”며 “은행이 승리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 불거지는 경제 이슈가 부쩍 늘었습니다. 경제 분야 취재 경험과 유럽 특파원으로 접하는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 유럽 경제를 풀어드리겠습니다. |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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