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광 부추김에 흑화된 신하균, 조폭 버전 파우스트 보는 맛('악인전기')
[엔터미디어=정덕현] "한변. 우리 그동안 좋았잖아요? 이번 기회에 우리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차피 서로 죽이고 싶어 했으니까. 둘 중 하나만 남는 거야. 난 나가 있을 테니까." ENA 일월드라마 <악인전기>에서 서도영(김영광)은 한동수(신하균)에게 그렇게 말하며 컨테이너를 빠져나간다. 그 컨테이너 안에는 그래서 한동수와 철천지원수인 문 로펌의 문상국(송영창) 대표만 남게 됐다.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 치고받는 사투 끝에 한동수는 서도영이 남기고 간 칼로 문상국을 찔러 살해한다.
그리고 컨테이너를 빠져나오는 한동수에게 서도영이 다가간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동수의 손에서는 문상국의 피가 흘러내린다. 서도영이 손을 내밀며 말한다. "우리 이제 진짜 파트너예요." 한동수의 피 묻은 손이 서도영의 손을 잡는다. 서도영 말대로 이제는 한동수 역시 저 범죄의 세계 깊숙이 그것도 살인이라는 끝내 넘지 말아야할 마지막 선을 넘은 것이다.
<악인전기>는 마치 조폭 버전의 <파우스트>를 보는 듯하다. 한동수라는 생계형 변호사는 어쩌다 서도영이라는 조폭을 만나 이렇게 점점 깊숙한 범죄의 늪으로 빠져들었을까. 그 시작은 공포였다. 서도영의 살해 현장을 목격한 한동수와 그의 이복동생 한범재(신재하)가 이를 덮기 위해 그들마저 죽이려 하자, 한동수가 저도 모르게 '공범'이 되겠다 자청한 것.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지만, 그들은 그래서 서도영이 죽인 이들의 사체를 은닉하는 일을 저지른다.
하지만 서도영의 마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은밀하게 한동수가 어떤 사람인가를 조사한 서도영은 그가 가진 복수심과 열등감 같은 걸 이용한다. 문 로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던 시절 문상국의 정치자금 운반책이었던 여직원이 살려달라고 자신에게 애원해 그가 언론사에 이 사실을 제보하면서부터 한동수는 나락을 걷게 됐다. 변호사가 됐지만 문상국이 힘을 써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한동수는 교도소 접견실을 들락거리며 일을 해야하는 생계형 변호사가 됐던 것. 그러니 한동수가 문상국에 대해 갖고 있는 열등감과 복수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서도영은 그걸 건드리면서 한동수를 범죄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아내를 위해 나선 소송에서 상대편 변호사로 문 로펌 문상국 대표의 아들이자 변호사인 문해준(최병모)이 나와 사실상 승소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을 때, 서도영은 조폭들을 움직여 문해준을 감금하고 사적 영상까지 찍어 아예 법정에 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한동수가 승소하게 해준다. 또 한동수가 어쩌다 제안하게 된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가 대박을 터트리자 서도영은 애초 주기로 했던 액수의 두 배를 줌으로써 한동수의 욕망을 건드린다.
급기야 문상국의 사주로 벌어진 방화로 한동수의 어머니가 사망하게 되자, 그 장례를 챙겨주고 나아가 그 일을 실행한 조폭들을 붙잡아 한동수의 복수심을 건드린다. 그러면서 문상국이 접근해 한동수를 제거하는 조건으로 미래를 약속하자, 서도영은 그 제안을 수락하는 척 하면서 문상국과 한동수를 한 컨테이너에 집어넣고 생사를 건 싸움을 하게 만든다. 결국 그렇게 살인이라는 선까지 넘게 만듦으로써 한동수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악인전기>가 흥미로운 건 선과 악 혹은 악과 악의 대결 같은 평이한 느와르를 넘어서, 평범한 인물이 서서히 흑화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는 데 있다. '위인전기'가 아닌 '악인전기'를 그리고 있는 것. 서도영의 부추김과 그래서 끝내 그 유혹에 넘어가는 한동수의 흑화. 그건 마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영혼을 팔고 변해가는 파우스트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악인전기>에서 파우스트 같은 한동수는 끝내 메피스토펠레스 서도영의 손아귀에서 농락당하는 인물로 끝나게 될까. 어쩐지 여기서는 <파우스트>와는 달리 한동수가 서도영을 압도할 것 같은 반전의 예감이 솔솔 피어난다. 죽기 직전 문상국이 "나 죽이고 나면 서도영이 널 살려줄 것 같애?"라고 묻자 한동수가 하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두고 보세요. 누가 죽고 누가 사는지."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까. 끝까지 절대악으로 군림하는 서도영일까, 아니면 반전 변신으로 진짜 '악인전기'를 써나갈 한동수일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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