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사라진 시대, ‘출발! 비디오 여행’
일요일 낮 방영돼 시청률 3%대 보장
“신작과 명작 아우르는 세대 소통 프로그램”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하 출비)은 1993년 10월 첫 방송을 했다. 그해 4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개봉해 국내 영화 최초로 관객 100만(서울 기준)을 넘겼다. 1990년대 후반 <접속> <쉬리> 등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작품들이 잇달아 개봉했다. 비디오 대여점의 마지막 전성기도 이즈음이었다.
이후 DVD를 비롯해 영화를 저장하는 다양한 방식이 등장하고 개봉 영화가 IPTV로 동시 공개되는 일이 잦아졌다. 마침내 2016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비디오’는 완전히 잊힌 이름이 됐다. 그런데 <출비>는 여전히 방송 중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MZ는 ‘비디오테이프’ 몰라도…“당대 감수성”
지난 30년 사이 달라진 것이 너무나도 많다. 전문적인 영화 소개와 리뷰가 많지 않던 시절, 일부 신문사와 영화잡지, 방송사 등에서 하던 영화 리뷰는 이제 결말까지 소개해주는 유튜브의 영화 전문 리뷰어들에게 점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감독이나 이동진, 정성일 같은 유명 평론가들이 함께해 영화를 소개하는 ‘GV’를 찾거나 스스로 더 전문적인 리뷰를 쓰기도 한다.
<출비>가 설 곳은 어디일까. 아니, 비디오테이프가 무엇인지도 모를 MZ세대들 앞에서 ‘비디오 여행’을 하자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진 않을까. <출비>를 제작하는 외주제작사 CR미디어 소속으로 프로그램 연출을 맡고 있는 조은이 팀장은 “‘비디오’는 당시 시대의 감수성이 담긴 말”이라며 “프로그램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단어”라고 말했다.
일요일 낮시간에 편성된 <출비>는 평균 약 3%대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이 보장된다. 제작비는 크지 않지만,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확보한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이다. KBS 1TV의 대표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과 동시간대 방송되는데, <출비>도 <노래자랑> 못지않은 가족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조 팀장은 “부모님과 주말에 자장면을 먹으면서 보다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와 함께 보는 방송이 <출비>”라며 “오래된 시청자가 많다 보니 ‘팬덤’도 있어서 방송이 마음에 안 들면 제작사로 전화를 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유튜브 결말 포함 리뷰 인기, 출비는?
흔히 영화 프로그램이라면 비슷한 영화 두 편을 번갈아 소개하는 코너가 있게 마련인데, 원조가 바로 <출비>의 ‘영화 대 영화’다. 처음엔 개그맨 전창걸이 진행했다. 이후 진행자 교체가 있었고 2002년부터 김경식으로 정착해 20년이 넘었다. 초기엔 극장 상영작이나 이미 비디오로 나온 명작 영화 소개가 많았다면, 지금은 시대 흐름에 발맞춰 OTT 오리지널 영화나 시리즈 드라마도 소개한다.
2005년과 2006년 각각 방송을 시작한 SBS <접속 무비월드>와 KBS <영화가 좋다>가 <출비>의 경쟁자였던 시절은 지나간 듯하다. 리뷰 시장의 중심이 유튜브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통상적으로는 국내 개봉 신작의 하이라이트나 EPK(홍보자료)는 우리가 가장 먼저 받아 본다”며 “지금은 판도가 바뀌어서 <출비> 제작진보다 신작 소스를 먼저 접하는 파워 유튜버들도 있긴 하다”고 말했다.
유튜브 리뷰 콘텐츠들처럼 영화의 결말까지 소개하는 코너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저작권법을 준수하다 보니 어렵다고 한다. 조 팀장은 “구작이라도 결정적인 인물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들, 스포일러성 화면 등에 대한 협의를 (제작사 등과) 한다”며 “이 때문에 영화를 선정하고 이 영화에 대한 방송 허락을 얻는 데 방송 준비의 상당 시간을 쏟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시청자가 영화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시청률을 올리자고 결말까지 소개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변화가 크지 않은 프로그램이지만 흐름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최근엔 2018년 이후 방송분 전체를 OTT 웨이브로 서비스하고 있다. 유튜브에도 ‘출비’ 공식 계정이 생겼다. 구독자는 5만명 정도다. 프로그램 총연출을 맡고 있는 MBC 이종혁 책임프로듀서(CP)는 <출비>에 대해 “신작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고 명작을 통해 과거를 돌이켜보는 세대 소통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방송사에도 의미가 있다”며 “영원히 영(young)한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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