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이냐 ‘리모델링’이냐…국회에 발목잡힌 1기 신도시
‘노후계획도시’ 범위도 미정
“불확실성만 커” 불만 커져
그런 사이 리모델링을 추진해 온 아파트 단지들은 사업 진행을 중단했고, 재건축 추진 단지들은 용적률 상향·안전진단 면제 특례가 주어지는 특별법 제정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연내 국회 통과 여부가 주목된다.
8일 국회 등에 따르면 ‘대한민국 시도의회 의장협의회’는 지난달 말 국토교통부와 국회에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건의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체계 아래서는 광역적 정비에 한계가 있는 만큼 특별법 제정을 통해 노후계획도시를 하루빨리 체계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의회는 “대전 둔산지구는 1990년대 초중반 대규모로 공동주택이 공급돼 대전 전체 택지개발지구 면적의 34%를 차지한다”면서 “30년이 지난 지금 노후화된 주거 시설을 개선하고, 지구 전체의 주거 여건을 향상할 방안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2월이다. 3월에는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이 정부·여당안을 대표발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1기 신도시 재정비와 이를 통한 주택 10만호 추가공급이었으나, 형평성 논란이 일자 특별법 적용 대상을 지방 노후도시까지 열어 뒀다.
택지조성사업을 마치고 20년이 넘은 면적 100만㎡ 이상 택지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해주는 게 골자다.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에는 가구 수를 최대 21% 늘릴 수 있는 특례를 주는 방안도 제시됐다.
특별법 적용이 가능한 지역은 전국 51곳, 주택 103만여 가구다. 정부의 특별법 발표 이후 이들 지역에선 속도감 있게 재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단지도 생겼다. 일산 일부 단지에선 리모델링 사업 계속 추진 여부를 놓고 주민 간 의견 대립이 나타나기도 했다.
문제는 8개월째 국회의 특별법안 심사가 지지부진해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원회는 5월 말부터 정부·여당안을 포함해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특별법 13건을 세 차례에 걸쳐 심사했다. 하지만 아직도 ‘노후계획도시’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했다.
특별법으로 1기 신도시 등 특정 지역과 수도권만 특혜를 보면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국회 국토위 소위를 통과한다 해도 국토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의결과 본회의 상정·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달 22·29일과 다음 달 6일 예정된 소위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실상 연내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은 어려워진다.
내년이면 여야가 본격적인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논의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진다.
연내 처리가 되지 않으면 내년 5월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되고, 22대 국회에서 재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1기 신도시는 재건축 연한 30년이 도래했지만 기존 아파트 용적률이 평균 188%에 달해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기존 정비 방식으로는 안전진단 면제, 용적률 상향 등 특례 부여가 어렵기에 특별법 제정 불발 시 주민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특별법 없이 1시 신도시와 지방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이 안전진단을 통과해 일시에 재건축을 요구하면 부동산 시장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1기 신도시 내 30년 경과 아파트는 올해 12만6000가구(43%)에서 2026년 27만3000가구(93%)로 급격히 늘어난다.
다만 특별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높은 금리가 유지되고 공사비도 오른 상황에서 분당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업성 확보가 어려워 재건축 추진이 쉽지는 않을 거란 시각도 있다.
이런 가운데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7일 오전 국회 본관에서 1기 신도시 정비 총괄기획가들과 함께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 박정하 수석대변인을 만나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국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원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내년 중 기본방침(국토부)·기본계획(지자체) 병행 수립, 선도지구 지정 등 국민께 드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내 특별법 통과가 매우 절실하고 간절한 상황”이라며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전국 노후계획도시 주민들의 염원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당 차원에서 특별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에 애써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어 “특별법은 단순히 1기 신도시를 재건축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수도권·지방을 모두 아우르는 전국 노후계획도시의 도시기능 향상과 주민들의 정주여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법”이라며 “특별법 없이는 계획도시 특성을 고려한 질서 있고 체계적인 정비가 불가능한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특별법 통과에 많은 의원님들이 힘을 실어주시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이에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특별법의 필요성, 주민들의 높은 관심과 기대에 깊이 공감하며 당 차원에서 특별법 제정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야당과도 초당적 협력 차원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부도 이달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와 긴밀히 협력해 연내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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