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와중에도 글로벌 스포츠 시장 접수하는 '오일 머니'

황윤정 2023. 11.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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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UAE·카타르, 자본력 앞세워 주요 경기·대회 유치
인권 탄압 이미지 지우는 '스포츠 워싱' 비판도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퓨리와 은가누의 세기의 대결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중동 산유국들이 '오일 머니'를 앞세워 글로벌 스포츠 시장을 접수하고 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새로운 스포츠 제왕들'(THE NEW KINGS OF SPORTS)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글로벌 스포츠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동 산유국들을 7일(현지시간) 조명했다.

프로복싱 WBC 헤비급 챔피언 타이슨 퓨리와 종합격투기 스타 프란시스 은가누의 '세기의 대결'은 지난달 2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링에서 펼쳐졌다. 대전을 기획한 복싱 프로모터들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퓨리는 "그들이 경기를 장악하고 있으며 5년, 10년 안에 모든 스포츠 대국이 될 것"이라며 "모든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리시즌 경기 장소를 물색하던 미국프로농구(NBA)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손을 잡았고, 7개 스포츠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미국 회사 모뉴멘털 스포츠는 카타르에서 자금력이 풍부한 새 투자자들을 찾았다.

WP는 "중동으로부터 자금 유입이 세계 스포츠 권력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자금의 출처를 놓고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여성, 노동자, 성소수자(LGBT)의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중동 국가에서 여러 논란이 나오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일각에선 중동 국가들의 투자 행보가 인권 탄압국이란 비난을 지우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하는 '스포츠 워싱'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우디의 경우 2001년 9·11 테러, WP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 등 미국을 강타한 사건들과 연계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사우디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WP는 이러한 논란에도 "(주요 스포츠) 리그와 팀, 선수들이 (중동 국가들의) 돈을 거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자원과 영향력의 재편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스케마(Skema) 경영대학원의 사이먼 채드윅 교수는 "지금 우리는 지리와 정치, 경제의 교차점이 스포츠를 형성하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면서 국가들이 스포츠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고 힘을 축적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WP는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으로 중동 지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중동 국가들의 스포츠 투자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짚었다.

중동 국가들은 파리 생제르맹(카타르), 맨체스터 시티(UAE), 뉴캐슬 유나이티드(사우디) 등 유럽의 명문 축구 클럽들을 인수했다. 또 사우디 국영 에너지 기업 아람코(포뮬러 원), 카타르항공(NBA), 에미레이트항공(US 오픈) 등 중동 지역 기업들은 미국 스포츠 시장 등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 이후 중동 국가들은 대형 스포츠 행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우디는 2034년 월드컵 개최가 점쳐지고 있으며 카타르가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설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WP는 한 국가가 세계 무대에서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해 스포츠를 활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면서 유럽과 북미가 수십 년에 걸쳐 세계 스포츠를 장악해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의 경우 아시아에서 스포츠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서구권에서 한국을 재조명하고 중국이 올림픽 유치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고 WP는 평가했다.

채드윅 교수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전 세계에 (스포츠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면서 이 시기를 '스포츠 2.0'으로 명명했다.

그는 다음 단계는 디지털 미디어 붐과 함께 국가들이 광범위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를 이용하는 '스포츠 3.0'이라며 더 많은 아랍 국가가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예산이 삭감되면서 전통적인 개최국들이 올림픽과 같은 고비용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할 여력이 줄어든 가운데 특히 자금력이 있는 중동 국가들이 스포츠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 컨설턴트인 마크 가니스는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아직 1쿼터 중반도 안 지났다"면서 "향후 10년 이상 성장할 메가트렌드"라고 WP에 말했다.

yunzh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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