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솔로프로젝트의 화룡점정, 정국의 'Golden'
아이즈 ize 이설(칼럼니스트)
방탄소년단(BTS)의 그룹 활동 중단은 결과적으로 놓고 보면 아쉬워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2013년 데뷔 후 어느덧 10년, 멤버들의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그들은 거대한 하나의 그룹에서 작지만 단단한 일곱 개의 솔로로 나뉘어 더욱 빛을 뿜었다. 최고의 글로벌 그룹이라는 안전한 타이틀을 떠나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2022년 중반 제이홉과 맏형 진에서 시작된 솔로 도전은 최근 막내 정국에 이르러 BTS의 또다른 존재 방식으로 완성됐다.
특히 정국이 지난 3일 발표한 솔로 앨범 '골든'(Golden)은 7인 개별 활동의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이다. 앞서 싱글 '세븐'(Seven)을 발표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앨범이 나온 것도 엄청나지만 타이틀 곡 '스탠딩 넥스트 투 유'(Standing Next to You)를 비롯해 11개의 수록곡들이 국내외에서 즉각적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 또한 대단하다.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4일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 송 글로벌 차트에서 단숨에 2위에 올랐다. 1위는 역시 정국의 '세븐'. 자신의 곡으로만 1, 2위를 석권한 셈이다.
'골든' 앨범 자체에 대한 반응도 매우 뜨겁다. 아이튠즈 77개국 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일본 오리콘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국내에선 발매 하루 만에 약 214만 장이 판매돼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 기세라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위로 진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1위라면 솔로 가수로선 한국 최초로, K-팝의 역사를 또 한 번 쓰게 된다.
'골든'이 화제가 되는 것은 특히 '스탠딩 넥스트 투 유'와 다른 수록곡 '3D' 때문이다. '스탠딩 넥스트 투 유'는 경쾌한 리듬의 디스코 펑크 곡이다. 최근 북미에서 유행 중인 올드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가장 미국적인 곡일 텐데 한국 가수가 부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팝송'같다. 1990년대 말 또는 2000년대 초의 올드팝을 연상하게 하는 리듬, 간결하고 다소 직설적인 가사, 중독적인 사비(후렴구)가 매우 특징적이다. 밝고 톡톡 튀는 정국 고유의 컬러를 부각하면서 더욱 성숙해진 분위기를 담고 있다.
5일 미국 아이하트 라디오 라이브 공연에서의 퍼포먼스가 이를 잘 증명한다. 빈티지한 청바지와 재킷 차림의 정국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안무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사랑스럽고 리드미컬한 가사에 맞춰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엇보다 정국의 장점인 달콤하면서도 예리한 고음 처리가 돋보였다. 정국이 노래할 때마다 종종 비교됐던 전설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의 음색을 연상시킨다. 정국은 BTS의 첫 영어곡 '다이너마이트'를 부를 당시에도 팝스타 뺨치는 가사 전달력과 음색으로 화제를 모았다. 비음 섞인 고음의 보이스가 마치 마이클 잭슨을 듣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정국은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골반춤'까지 살짝살짝 선보였다.
'3D'는 좀 다른 매력이 있다. 적잖이 야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이미지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솔로 활동에서만은 정국은 섹스 어필한 남자가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3D'의 가사를 있는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다면 방송 심의 대상이다. 아니 그 전에 충성스러운 여성 팬클럽 아미들로부터 원성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잭 할로우의 랩 부문은 적나라하다. 거칠고 노골적인 조크와 암시가 수시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노래를 일일이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가장 대중적인 미국 팝 장르 안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익숙한 슬랭을 써가며 만든 노래를 번역해봤자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영어의 느낌 그대로, 리듬 그대로, 흥얼거리면 그만이다. 사실 선정적이고 노골적인 팝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2000년대 어셔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랩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요즘도 흔하디 흔하다. 도자 캣, 메건 디 스탤리온 등은 모두 치명적인 스타일로 빌보드 정상권까지 올랐다.
정국은 확실히 자신의 장르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 주류 힙합과 랩, 디스코, 팝과 나란히 경쟁해도 손색이 없는 리듬과 가사의 댄스곡이다. 마이클 잭슨처럼 궁극적으로는 팝 레전드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BTS 멤버 중에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RM이라는 건 모두가 동의하는 이야기일 터. 그럼 두 번째는 누구일까. 바로 정국이다. 정국은 '러브 유어 셀프' 등 그룹 투어 시절에도 거의 RM이 도맡다시피 하는 영어 인터뷰에 꼭 한마디라도 덧붙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띄엄띄엄하던 영어 실력은 이제 외국인들도 놀랄 만큼 자연스러운 호흡과 발음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정국의 솔로 앨범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으나 이건 결국 BTS 전 멤버의 도전을 대변한다. 앞서 말했듯, 제이홉과 진에서 시작된 멤버들의 솔로 활동은 지난 9월에 발표된 뷔의 솔로와 이달 추가된 정국의 앨범으로 완성됐다. 이들이 그룹 활동을 하면서 줄곧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었다. 그건 자신만의 색깔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데뷔 후 1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그룹으로서 어떤 것을 하기 위해 개인으로서 희생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각자가 추구하는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음이 간질간질했을 것이다.
BTS의 7인은 그룹 활동 잠시 중단을 선언한 후 이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것처럼 지난 2년간 차례대로 차곡차곡 솔로 활동을 개척했다. 2022년 7월 제이홉의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10월 진의 '디 애스트로넛(The Astronaut)', 12월 RM의 앨범 '인디고(Indigo)', 그리고 올해 초부터 다시 지민의 '페이스(Face)'와 슈가의 '디 데이(D-Day)', 정국의 '세븐'과 앨범 '골든', 뷔의 '레이니 데이즈(Rainy Days)' 등으로 숨가쁘게 이어왔다.
한결같이 멤버 고유의 마인드와 색깔이 잘 묻어나 있다. 하루아침에 만든 게 아니라는 게 잘 느껴진다. '잭 인 더 박스'의 탄탄한 스토리 라인, 아미를 향한 순수한 사랑이 느껴지는 '디 애스트로넛', 천재적이고 실험적인 조합이 돋보이는 '인디고', 애절하거나 매혹적인 '페이스'와 '레이니 데이즈' 등 그동안 어떻게 이런 음악적 개성을 숨기지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하지만 다양한 컬러 속에서도 변함없는 게 있다. 바로 그룹이든 솔로든 자신들의 고민과 성장통이 앨범 안에 녹아 있다는 점이다. 제이홉부터 뷔까지 누구 하나랄 것 없이 자신이 처한 현실적 상황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게 부끄러움이든, 고통이든, 자만심이든, 깨달음이든, 사랑스러움이든 상관없다. 삶을 살아가고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 배어 있다.
이제 다시 정국의 '골든'으로 돌아가보자.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앨범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정국의 거친 변신을 탓하기보다는 또다른 성장을 위한 안간힘으로 보여 어루만지게 된다. 다행히 목표한 대로 글로벌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오리지널 팝 팬들이 '아시안 마이클 잭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더 궁금해졌지만 일단은 절반 이상의 성공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이대로면 한국 솔로 가수 최초 '빌보드 200' 1위도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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