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70대 노모 ‘알몸’으로 내쫓은 딸…엄마는 결국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2023. 11. 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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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치매에 걸린 70대 노모를 추운 겨울에 알몸으로 내쫓은 딸이 2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달 18일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49·여)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6살 위인 오빠와 함께 치매에 걸린 70대 노모를 보살펴왔던 A 씨는 지난해 자신의 어머니를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존속학대치사)로 법정에 섰다.

A 씨는 지난 2021년 12월 9일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거주지에서 어머니 B 씨에게 냄새가 난다며 옷을 벗으라고 했다. 이후 A 씨는 알몸 상태인 어머니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던 B 씨는 A 씨가 시키는 대로 밖으로 나갔다. 당시 시간은 오후 6시 50분, 당시 기온은 10.6도였다. 겨울 날씨 치고는 비교적 높은 기온이었지만 알몸 상태인 B 씨에게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추위였다.

지나가는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됐을 당시 B 씨는 추위에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웃 주민은 B 씨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A 씨 집 문을 두드렸지만 A 씨는 묵묵부답이었다. 또 다른 주민도 A 씨 집 초인종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B 씨는 1시간30분가량 알몸 상태로 홀로 밖에 방치돼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온은 더 내려갔고, 보다 못한 이웃 주민이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괜찮나? 병원에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B 씨는 힘겹게 “괜찮다”고 답했다.

경찰관이 B 씨를 데리고 집을 찾아오자 A 씨는 그제야 문을 열어줬다. 집 안에 들어선 B 씨는 지친 기색으로 “춥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1시간 뒤쯤 경찰의 연락을 받은 B 씨 담당 사회복지사가 A 씨 집에 도착했다. 사회복지사가 방문했을 당시 B 씨는 나체로 엎드려 누운 채 담요를 덮고 있었다. ‘B씨가 왜 옷을 벗고 있느냐’는 사회복지사의 물음에 A 씨는 “B 씨가 자꾸 옷을 벗으려고 한다”고 했다.

이후 사회복지사가 B 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B 씨의 몸을 돌렸을 때 B 씨는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사회복지사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B 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B 씨의 사망 원인에 대해 “저체온증 또는 급성 심장사로 보인다”면서도 “당뇨합병증이나 다른 기저질환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존속학대치사 혐의로 법정에 선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에게 옷을 다 벗고 밖으로 나가라고 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고의로 학대한 건 아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A 씨는 법정에서 “(나는) 10년 넘게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며 “어머니와 오빠가 내 보호자였지 내가 어머니를 돌볼 의무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 “옷을 벗겨 밖으로 내보낸 건 학대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지난해 6월 8일 “피해자가 집 밖에서 장시간 머문 것은 사실이나 이후 집에 돌아왔을 때 체온이 어느 정도 회복되거나 정상 상태에 가깝게 있었다”며 “부검 감정의가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 비춰볼 때 피고인의 행위로 저체온증 상태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피고인이 정신질환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동반했다”며 “피해자의 건강 상태가 악화됐다고 보호 대상자로 그 의무가 변경됐다고도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B 씨가 원래 지병이 있는 상태에서 저체온이 악화인자 또는 유발인자로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부검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을 맡은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달 18일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충격을 줘 자신의 말에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피해자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이 자체만으로도 학대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에게 다른 외부인자 없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온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고령의 치매환자로 당뇨까지 있는 피해자가 밖에 있었다면 얼마든지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학대 행위와 피해자의 사망 간의 인과 관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은 20대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왔고 정상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학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피고인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려운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며 A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송치훈 동아닷컴 기자 sch5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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