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 장례식에 참석한 관객들…"모호함 자체를 봐주세요"
모든 출연진 공연 내내 퇴장 없이 무대에…"이상이 누군지 파헤치는 작품 아니야"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제가 원래 디테일에 집착하는 편이라 배우들이 질려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틀린 건 없다'는 생각으로 임했죠. 가변성이 큰 작품이에요."
다음 달 서울예술단이 6년 만에 재공연하는 창작가무극 '꾿빠이, 이상'을 연출한 오루피나와 안무가 예효승은 지난 2일 예술의전당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작품이 가진 특별함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연수 작가의 동명 소설을 모티브로 한 '꾿빠이, 이상'은 스물일곱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공연이다. 2017년 초연 당시 "난해하지만,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받으며 화제가 됐다.
화제성에도 재공연까지 6년이 걸린 데는 무대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기때문이다. '꾿빠이, 이상'은 관객이 공연에 참여하는 이머시브 공연으로 무대와 객석 구분 없이 공연장 전체를 하나의 세트장처럼 꾸린다. 이번 공연이 열리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내부 구조를 조정할 수 있는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객석을 아예 없애고, 공연장을 오렌지색 임시 벽으로 둘렀다.
공연은 관객들이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공연장에서는 이상의 장례식이 한창이다. 관객들은 장례식에 참석한 손님으로 배우들을 따라 이동하며 공연을 관람한다.
오 연출은 "관객들이 '제3자'로 공연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배우들과 함께 움직이는 '액터'로 참여한다"며 "배우들을 따라 이동하다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앉으면 된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공연만이 가진 현장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의 흐름도 독특하다. 배역에 상관없이 모든 배우는 공연 시간 90분 내내 한 번도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 자리한다. 무대에는 자신이 누군지 혼란스러운 '감각의 이상(感)',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지성의 이상(知)', 자기 얼굴을 찾고자 여러 사람을 만나는 '육체의 이상(身)' 총 3명의 이상이 오른다. 또 이상과 동시대를 살고 함께 활동했던 당대 문인 박태원, 김유정, 김기림 등 주변 사람들이 나와 이상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들려준다.
작품은 수수께끼 같은 인물 이상을 깊게 파고들지만 '이상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오 연출은 "이상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모호함'이다. 보통 공연에서는 인물이나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모호함을 펼쳐내려고 노력했다"며 "시간이나 논리적인 서사가 아닌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중구난방으로 들려준다. 초연 때 '공연을 보니 이상이 누군지 알겠다'는 반응이 안 나와서 오히려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들에게도 등장인물들이 실존 인물이지만 너무 파고들어서 공부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인물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들이 자기들만의 표현 방식으로 재창조해내는 것이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며 "배우들이 오늘날의 예술가로서 무대 위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고 열려있는 작품이죠. 보시는 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하실 수도 있어요. 저희 작품은 숨겨져 있는 걸 파헤쳐나가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내면적인 해소로 나아가요. 관객들이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기보다는 극의 포인트마다 각자의 감정적인 순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모호함을 특징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보니 초창기 대본도 창작진과 출연진이 대사, 음악, 안무 등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뼈대만 갖춰져 있었다.
예효승 안무가는 출연진 16명의 '움직임'으로 대본의 여백을 채웠다. 출연진은 각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듀엣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관객들은 각자의 시선에 따라 다른 장면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 안무가는 "정확한 타이밍에 안무 동작이 나오는 장면이 있지만, 정형화된 군무가 나오지 않는다"며 "대형 뮤지컬의 경우 무대와 거리가 있는 객석에서 정면으로 바라봤을 때 군무가 역동적인 느낌을 주지만, 소극장에서 하는 이머시브 공연인 만큼 섬세함을 살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1부터 10까지의 안무가 있다면,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보일 수 있는 안무에 집중했다"며 "극장이 좁고, 출연진과 관객이 같은 공간(무대)에 있는 만큼 몸에서 오는 긴장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다음 달 9일부터 17일까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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