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방이 유광점퍼, LG 팬들의 일방적 응원에도…무너지지 않은 고영표 "예상보다 많아 놀랐지만…" [KS]
[OSEN=잠실, 이상학 기자] KT 토종 에이스 고영표(32)가 데뷔 첫 한국시리즈 선발등판 경기에서 천적 LG를 극복했다. 사방이 LG 팬들로 둘러싸인 잠실구장에서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냈다.
고영표는 지난 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7전4선승제) 1차전에 선발등판, 6이닝 7피안타 2사구 3탈삼진 무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LG 타선을 봉쇄했다. 위기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무너지지 않은 고영표의 버티기로 KT도 1차전을 3-2 승리, 거두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고영표에겐 한국시리즈 첫 선발등판이었다. 2021년 첫 한국시리즈에선 선발이 아닌 구원으로 3경기 나서 홀드 2개를 거두며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 4전 전승 우승에 힘을 보탰지만 선발투수로 나서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만에 다시 오른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1차전 선발 중책을 맡았다.
경기 시작은 불안했다. 1회 1사 후 박해민과 김현수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오스틴 딘의 2루 땅볼 때 박경수의 포구 실책으로 선취점을 허용한 고영표는 오지환에게 우전 안타를 맞아 이어진 1사 만루에서 문보경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주며 추가 실점했다.
박동원을 3루 땅볼 처리하며 어렵게 1회를 넘긴 고영표는 2회에도 2사 1,2루에서 김현수를 1루 땅볼 잡고 위기를 넘겼다. 3회 첫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지만 4회 몸에 맞는 볼과 안타로 안타로 1사 1,3루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홍창기를 1루 땅볼 유도하며 이어진 2사 2,3루에서 박해민을 8구까지 가는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1~3구 연속 볼로 시작해 불리한 카운트였지만 절묘한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5회에도 2사 1,2루에서 박동원을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3구 삼진 잡고 고비를 넘긴 고영표는 6회를 삼자범퇴로 막고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했다. 총 투구수 97개로 최고 136km 직구(53개), 체인지업(35개), 커브(9개)를 구사했다.
승리투수는 되지 못했지만 선발투수로서 제 몫을 다했다. 이강철 KT 감독도 경기 후 “(2회 문상철의 번트 실패로) 분위기가 넘어가나 싶었는데 고영표가 그 다음 이닝부터 잘 막아줘 승기가 넘어가지 않았다. 초반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고영표를 칭찬했다.
9회 결승 2루타로 데일리 MVP가 된 문상철과 함께 수훈 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고영표는 “1회부터 위기가 많았는데 잘 넘겼다”며 “양 팀 다 어수선한 플레이들이 나왔지만 그런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잘 던져서 점수를 안 주고, 분위기를 안 넘겨주는 데 집중했다. (1회 2점을 줬지만) 6회까지 더 이상 실점 없이 막겠다는 생각으로 했다”고 밝혔다.
2002년 이후 무려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오른 LG 팬들의 한풀이 응원이 경기 내내 이어졌다. 고영표가 1루로 견제구를 던질 때마다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2만3750석 매진을 이룬 잠실구장의 대부분 관중이 LG 팬이었다. 3루 측 KT 응원석도 절반 넘게 LG 팬들이 점유했다. 온 사방이 유광점퍼를 입고 노란색 응원 수건을 든 LG 팬들로 가득했지만 고영표는 기죽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무너질 듯 무너지지 않는 투구로 LG 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열광적인 LG 팬들의 응원에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고영표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LG 홈팬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그럴수록 마운드에서 최대한 즐기려 노력했다. 그런 부분에서 적응이 됐다. 많은 팬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좋은 플레이해서 이기면 더 짜릿한 기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때 LG 상대로 4경기에서 승리 없이 2패 평균자책점 7.36으로 유난히 약했던 고영표였지만 이날은 퀄리티 스타트로 막았다. 정규시즌 때 LG에 6승10패로 열세였던 KT로서도 상대성을 극복한 1차전 승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고영표는 “시즌 때 우리가 LG에 많이 졌다. 저 역시 LG를 만나 힘든 경기를 했다. 그 패배들을 잊지 않았기에 오늘 승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LG전에선 늘 경기가 비슷했다. 상대 타자들이 잘 쳐서 역전 당하고 그런 경기가 많았는데 오늘 불펜투수들도 잘 막아주고 이전과는 다른 경기를 했다. 동료 선수들도 평소보다 조금 더 집중력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4회 2사 2,3루 위기에서 박해민을 8구 풀카운트 승부 끝에 절묘한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 처리한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한 게 이날 고영표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는 “야구를 하면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스리볼로 시작해서 1루를 채워야 하나 생각했는데 삼진을 잡고 나서 좋아졌다”며 “한국시리즈는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최고의 무대인데 거기서 선발은 처음이다. 1차전이기도 하고, 삼진이 필요한 위기 상황이라 그보다 더 짜릿할 수 없었다. (박)해민이형이 저한테 강하다. 제가 유리한 카운트에서도 체인지업을 공략하러 들어온다. 오늘은 체인지업이 잘 꺾여서 헛스윙을 유도했다. 그래서 더 짜릿했다”고 돌아봤다.
퀄리티 스타트로 잘 던졌지만 타선이 터지지 않아 승리는 거두지 못했다. 시리즈가 5차전까지 이어진다면 고영표는 한 번 더 선발등판하게 된다. 그는 “승리투수하면 좋다. 스포트라이트도 받을 수 있지만 팀이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개인 성적보다는 팀이 이겨야 한다. 그 생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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