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지식·복원 기술 ‘문무 겸비’… 문화유산 치료하고 되살린다

유승목 기자 2023. 11. 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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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문무 겸비'다.

국보·보물을 포함해 28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원) 장서각의 보존처리 전문 인력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김 전문위원은 "문화재에 대한 이해나 과학적 전문성이 부족할 경우 조악한 복원은 물론 문화재가 왜곡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시간적으로도 연구원은 하나의 문화재를 보존처리 하기 위해 1년가량의 시간을 들이는 데 비해 시장에선 한 달 만에 처리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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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중앙硏 장서각 특별전으로 본 보존과학
국보 등 28만점 소장 연구원
전문가 6명이 年 1만점 다뤄
현미경으로 분석·맞춤 채색
보존처리 하나에 1년여 걸려
“초상화 시대, 화풍으로 파악
직물별 시약 써 알아내기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자료보존관리팀이 유물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인문학적 소양에 자연과학 지식도 두루 갖춰야 해요. 초상화가 그려진 시대를 화풍으로도 파악하지만, 직물에 따라 시약을 다르게 써서 종이가 사용된 연대를 알아내기도 하죠. 문화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꽤 다르죠?”

한마디로 ‘문무 겸비’다. 국보·보물을 포함해 28만여 점의 문화재를 소장한 한국학중앙연구원(연구원) 장서각의 보존처리 전문 인력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요즘 교육계 화두인 문·이과 통합형 인재인 셈인데, 실제로 오래된 고문서의 그림과 문자를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분석하고 납과 수은 등 사용된 안료의 차이를 나타낸 데이터를 토대로 보존을 위한 맞춤 채색을 하는 등 문화재에 과학을 입히는 게 이들의 일이다. 연구원에서 보존처리 업무만 17년째인 김나형 전문위원은 “학창 시절에 미술을 좋아하면서 과학도 잘했었다”며 “문화재 보존처리 연구는 이런 성격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고문서 상태를 분석하고 보존처리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세월의 흔적이 묻은 유물이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식돼 있거나 그을리거나 찢긴 채로 발굴되는 게 자연스럽다. 문화유산을 역사의 증거를 넘어 미래 자원으로 활용하는 선진국에서 복원·보존처리 역량을 강조하는 배경으로, 이를 흔히 ‘보존과학’이라 부른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연구원은 국립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등과 함께 이 분야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사업을 벌이는 기관으로, 6명의 전문인력이 연간 1만 점에 달하는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성과를 담은 특별전시인 ‘보존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조선의 기록유산’도 장서각에서 진행하고 있다. 12월까지 열리는 전시는 보존처리를 통해 복제·복원된 37종 64점의 유물을 선보인다.

지난 6일 찾은 연구원에서 만난 김 전문위원은 “보존처리는 훼손된 문화재를 치료하는 목적도 있지만 유해 요소를 선제적으로 차단해 훼손을 막는 예방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인사동을 중심으로 퍼져 있던 표구사들의 먹거리였던 복원·보존처리를 연구원이 직접 담당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전문위원은 “문화재에 대한 이해나 과학적 전문성이 부족할 경우 조악한 복원은 물론 문화재가 왜곡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면서 “시간적으로도 연구원은 하나의 문화재를 보존처리 하기 위해 1년가량의 시간을 들이는 데 비해 시장에선 한 달 만에 처리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보존처리를 완료한 이제 개국공신화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번 전시에 소개된 ‘이제 개국공신화상’은 연구원의 보존처리로 되살아난 문화재다. 성주이씨 종택에서 받아 2016년 보존처리를 진행한 이 작품은 조선 영조 11년인 1735년 모사본으로 바탕비단의 40% 이상이 결손돼 있었는데, 특히 얼굴 부분의 가필(加筆·붓을 대어 보태거나 지워서 고침)이 큰 문제로 지적됐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중간에 재표구된 것인데, 원래 얼굴과 큰 차이가 있었다. 김 전문위원은 “훼손돼 사라진 얼굴 일부를 임의로 그려 넣은 것인데 실제 얼굴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개국공신의 초상화라는 목적과 다르게 격이 낮고 바탕비단 그림과 배접지 가필의 선도 맞지 않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비단을 보존처리 하는 전문적인 처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재 원형보존 원칙에 따라 가필을 제거하고 복원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존처리를 한번 할 때면 초상화가, 물감 권위자, 서지학자, 인문학 전공자 등이 모두 모여 시대에 어울리는 복원을 위해 서로 첨예하게 토론하고 방향을 설정한다”고 덧붙였다.

작업을 마치는 순간 수많은 문화재 연구자료가 쌓이게 되는 것도 보존처리가 중요한 점이다. 한지를 하나하나 발라내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당시 전통기술이나 풍속적인 맥락 등 데이터가 새롭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김 전문위원은 “지역 문중에서 그린 초상화는 나라에서 뽑은 화공이 아니라 지역 유명한 화가들이 그리기 마련인데, 특히 승려들이 많았던 터라 조선시대인데도 불교적 색채가 드러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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