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균열 무시, 화정아이파크 참사로” 중대재해 백서의 ‘그날’

장현은 2023. 11.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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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노동부, ‘중대재해 사고백서 2023’ 펴내
콘크리트 타설 공사 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윤석형씨는 사고 당일 오전 38층 외벽 거푸집 근처에서 15㎝ 정도의 균열을 확인했다. 볼펜으로 그은 것보다 약간 굵은 폭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균열이란 아무리 작아도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어서 단체 메신저에 이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상급자들은 별다른 코멘트가 없었다. 당연히 현장 작업자들에게 이 내용이 전해지지 않았다.”

노동부가 7일 발간한 ‘중대재해 사고백서: 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에 나온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관련 설명이다. 지난해 1월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붕괴 참사 이전에도 징후를 감지한 이들이 있었다. △임의 설계 변경 △부실한 콘크리트 품질 관리 △하부층 동바리 조기 철거 등 복합적 원인이 쌓여 비극이 만들어졌다. 현장에선 최후 경고도 결국 무시됐다. 광주 참사에는 ‘안전보다 속도’인 대한민국 건설업의 고질적이고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다.

노동부는 광주 참사와 같은 주요 중대재해 사례 10건을 묶어 ‘중대재해 사고백서’를 이날 발간했다. 지난해 있었던 611건의 사망 사고 중 중대재해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례를 중심으로 기존에 알려진 현장 안전보건조치뿐 아니라 사고 원인, 해당 기업의 작업 환경, 조직 문화, 안전보건관리체계, 해외 유사 사고 사례 등을 짚었다.

백서를 보면, 중대재해는 경영책임자의 무관심, 안전 비용의 부족, 원청의 관리 부족 등 다양한 요인이 엮여 일어난다. 광주 참사와 마찬가지로 에스피씨(SPC) 계열 에스피엘(SPL) 평택 제빵공장 끼임 사망 사고도 사고가 나기 전 충분한 참사 시그널이 있었다. 2020년부터 2022년 7월까지 3년간 해당 공장에서 일어난 산업재해 57건 가운데 12건이 끼임사고였다. 안전보건공단은 2020년 4월 혼합기 덮개 개방에 대해 시정 권고를 했지만, 끝내 덮개를 덮지 않은 채 작업이 이뤄지다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월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사망한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붕괴 사고 역시 토사 붕괴 몇 달 전부터 작업장 바닥에 균열이 발생하고 석분이 무너져 내리는 등의 경고 징후가 있었지만 안전 조처는 없었다.

소규모 사업장 등을 핑계로 충분한 안전 비용과 인력을 확보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지난해 5월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요양병원 증축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한 사고다. 안전난간, 추락방호망, 안전대 등 추락 방지 장치는 설치되지 않았고, 대표이사는 위험성 평가의 실질적인 내용도 모르고 있었다. 대표이사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고지된 조치를 실행하려고 했으나 소규모 건설사들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영세한 규모의 작은 회사라 하더라도 회사 대표라면 사업장 내 위험 요인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며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소규모 건설 현장일수록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안전 의지와 본사의 투자 없이는 안전 관리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원·하청 사이 안전고리가 무너져 발생하는 사고도 있다. 지난해 3월 국내 철근 공급 분야에서 손꼽히는 한국제강의 하청 노동자가 1.2톤 무게 방열판에 허벅지가 깔려 사망했다. 현장에는 작업 지휘자가 없었고, 재판부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지 못한 점을 들어 원청 대표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하청업체가 이런 안전관리를 할 능력이 있는지를 원청이 제대로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원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고라고 본 것이다.

백서 마지막에는 중대재해 사망 사고 611건의 사고 개요, 각 사고별 예방 대책이 공개됐다. 중대재해 사고백서는 고용노동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자책 플랫폼(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에서도 무료로 볼 수 있다. 11월 중 일반서점을 통한 책자 구매도 가능하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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