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상 『빙하와 어둠의 공포』 란스마이어 “모험의 심연에 자리한 혹독한 추위와 어둠과 외로움 묘파”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김용출 2023. 11. 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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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탐험하려던 사람들이 인간이나 동물, 또는 주변의 풍경 변화 없이 2년 동안 같은 배안에서 생활하면서 과연 무엇을 경험했던 것일까.

언젠가 오스트리아-헝가리 북극 탐험대가 1872년부터 2년여 악전고투 끝에 프란츠 요제프 제도(Franz Josef Land)를 탐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도는 북극 근처의 북위 79도와 81도, 동경 44도와 62도 사이에 위치한 190여 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곳. 그런데 탐험대는 항구를 출발한 지 14일 만에 얼어붙은 바다 한가운데 갇히고, 그로부터 2년간 북극해에서 혹독한 추위와 빙하의 위협, 식량 부족과 질병, 그리고 절대 고독과 죽음의 공포를 겪어야 했다. 24명의 탐험대가 같은 배 안에서 무려 2년간 생활했다니⋯.

오스트리아 소설가 란스마이어(Christoph Ransmayr)는 북극 빙하에 끼인 배 속에 2년여 갇혀 있던 탐험대의 모습이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북극 탐험대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다. 탐험대를 다룬 역사책은 물론 대원들이 남긴 회고록이나 수기를 찾아 읽었다. 탐험에 나선 배와 관련된 지식을 정리하기도 했다. 최대한 역사적 고증이나 확인을 했다.

모르는 부분이나 빈 곳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료와 사실 사이의 빈 간극을 자료와 고증을 바탕으로 상상했다. 그에게 상상은 시각적이었다. 탐험대원들이 결빙된 북극 근처의 배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지. 심지어 역사적이고 객관적 사실조차 상상을 통해서 허구로 재구성해야 했다.

“역사소설이 아니었지만, 당연히 역사적인 고증 확인을 했습니다. 역사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그럼에도 모르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울 수 있었기에 좋았습니다. 고증 후에 그것을 다시 상상력을 통해서 허구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어려웠어요. 고증을 통한 현실이 확실히 있었지만, 그것을 허구로 옮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저에게 있어선 적어도 혁명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란스마이어는 19세기 말 제국주의 기치 아래 지구상에 남은 미지의 땅 북극을 정복하기 위해 떠난 탐험대의 분투기를 담은 장편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진일상 옮김, 문학동네)를 1984년 발표했다.

작품은 화자인 ‘나’가 19세기 말 북극의 빙하 사이에 갇힌 탐험대를 쫓아가되, 이들 탐험대에 빠져서 1981년 직접 탐험에 나섰다가 사라진 허구적 인물 요제프 마치니를 매개로 ‘나’와 탐험대와 마치니의 세 개 시선을 따라서 전개된다. 1872년 8월 노르웨이 트롬쇠항에서 북극을 향해 떠나며 시작된 탐험대의 여정은 선장과 측량사, 사냥꾼 등이 남긴 스케치와 일기, 편지 등 기록을 따라, 기록 사이에 채워지지 않는 빈틈은 상상을 통해 천천히 펼쳐진다. 14일 만에 북극 빙하 사이에 갇힌 이들은 2년간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배 안에 갇혀 지내게 된다.

“트롬쇠항을 출발한 지 14일 만에 얼어붙은 바다가 사방에서 테게트호프호로 다가온다. 어디에도 열린 바닷길은 없다. 테게트호프호는 이제 배가 아니라 하나의 오두막이다. 얼음 덩어리 사이에 꼼짝없이 갇힌, 피난처이자 감옥이다. 돛은 아무런 소용없는 천 조각일 뿐이다.”(82쪽)

거대한 빙하를 깨고 배를 앞으로 나아가려 시도했지만 요지부동.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햇빛 한 점 없는 긴 어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 외로움, 배를 향해 점점 좁혀오는 빙하의 압력, 동상은 물론 괴혈병에 환각까지⋯. 사냥꾼이자 개 썰매꾼 할러는 태양이 사라지는 날을 이렇게 적었다.

“10월31일, 목요일. 날씨 맑음. 배 주위의 얼음은 꽤 조용하다. 중위의 모피 장화를 계속 만들었다. 10월30일에 마지막 태양을 보았다. 10월31일에 마지막 바다 갈매기를 보았다. 포경꾼이 바다 갈매기를 쏘아 죽였다.”(107쪽)

악전고투 끝에 탐험대는 2년 만인 1874년 8월 러시아 포경선에 의해서 구조된다. 탐험대가 출발지 빈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모두 847일. 그들은 북극에 제국의 깃발을 꽂았다며 잠시 영웅으로 환대받지만 곧 비아냥과 수근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한 뒤 가난 속에 살다가 외롭게 사라진다.

“율리우스 파이어처럼 행동한 사람이⋯ 자국민들로부터 잊히고 외면당한 채,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고, 장사꾼처럼 이리저리 떠돌면서 몇 푼을 위해 강연을 하도록 강요받았다니.”(267쪽)

대표작 『빙하와 어둠의 공포』를 비롯해 야심만만한 작품을 잇따라 발표해 온 란스마이어 작가는 올해 제12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문학상 심사위원단은 “다양한 메시지와 탁월한 문체를 통해 소설의 존재감을 상기시키는 한편, 시간의 부침에 저항하는 문학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란스마이어는 19세기 말 북극 탐험대의 여정과 모험과 공포를 어떻게 그렸을까.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위해 내한한 란스마이어 작가를 지난 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로 만났다.

―소설 전개의 주요한 인물이 되는 요제프 마치니는 어떤 인물인가요.

“허구의 인물입니다. 허구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과 과거를 이을 수 있었고, 현실의 입장에서 과거를 보는 것을 그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북극을 향해 항해를 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죠. 사람이 북쪽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 모험, 여행이라고 하는 주제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 지요.

“제 작품에서 동시성을 찾아볼 수도 있고, 여행을 하면서 많은 장소와 시간을 보실 수 있을 텐데요. 시간과 장소는 바뀌더라도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긴 힘이 듭니다. 예를 들면 유럽이든 한국이든 혹은 지금 현재 이슈가 되고 가자지구이든 어디에 사는 사람이든 간에. 희망은 미래를 향해 있고 기억은 과거를 향해 있지요. 현재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길이 매우 좁습니다. 예를 들면, 제 작품 『최후의 세계』의 오비디우스는 2000년 전 경기장에서 아우구스티누스 황제 앞에서 말을 하는데요. 그것이 어떤 하나의 상황, 그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고통과 행복과 걱정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결국 과거이지만 현실이 되고, 장소는 다르지만 소설 속에서 그것을 읽으면서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앙코르와트의 건축물이나 중국의 만리장성, 로마의 위대한 건축물들은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 죽고 없죠. 제가 글로서 시도하고 싶은 것은 그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건축물을 만들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갈망했는지, 어떤 것에서 고통을 받았는지, 그들의 일상은 어떠했는지를. 그들의 감정과 행복과 고통 같은 것들을 다시 살아나게끔 만드는 것이 제 글이 하는 일이고요. 제 글 안에선 공간 및 시간적인 섞임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한번 글을 써볼래?” 스스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던 고교 시절, 한 친구가 한 뭉치의 사진첩을 그에게 건네며 제안했다. 사진첩에는 스리랑카나 캄보디아, 브라질의 커피밭 사진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은 물론 청소년 시절까지 자신이 글을, 소설을 쓰게 될 줄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주변에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 세 명의 형제와 한 명의 여자 모두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면서 각자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각자 다양한 일을 해야 했다. 이때 그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리포터로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고교생 란스마이어는, 스리랑카나 캄보디아 등을 직접 간 건 아니었지만, 사진들을 보면서 마치 거기에 간 것처럼 상상을 하고 리포트를 쓰기 시작했다. 3인칭 시점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적지 않는 양의 글을 써냈다. 자료 연구와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연습이 되었다. 란스마이어 글쓰기의 원점이었다.

빈대학에서 철학과 비교 인종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 작가 엔첸스베르거(Hans Magnus Enzensberger)로부터 작가 및 인간으로서 영감을 받으면서 글쓰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다. 대학 졸업 뒤 월간지 『호외(Extrablatt)』의 문화란 책임자로 일하며 여러 잡지의 기고가로도 활동했다. 그러다가 ‘운좋게’ 첫 번째 소설을 발표하게 됐다.

“행운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게, 제가 출판사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글을 출판해달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저의 글을 보고서 이것을 출판하는 게 어떠겠느냐, 라고 말을 많이 들었죠.”

1954년 오스트리아 벨스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란스마이어는 1982년 인류 몰락을 그린 첫 소설 『찬란한 종말』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해 엮은 『빙하와 어둠의 공포』,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를 소재로 한 『최후의 세계』, 『날아다니는 산』, 『범죄자 오디세우스』, 『불안한 남자의 아틀라스』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1988년 출간된 『최후의 세계』는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이때부터 글 쓰는 작가로서의 삶이 연결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엘리아스 카네티 문학상, 독일 바이에른주 학술원 문학상, 아리스테이온상, 하인리히 뵐 문학상, 루드비히 뵈르네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역사적 사회적 환경이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오스트리아는 현재 평화롭습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나치와 히틀러 때문에 상당히 야만적이었어요. 살던 마을에서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히틀러 무리들이 파괴한 장소도 있고, 거기서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용소도 있었고요. 대학을 다닌 빈에서 유대인 생존자 자식인 유대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사라졌지만, 법이나 정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과거를 현재에서도 대면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과거가 아직도 현실로 남아 있죠. 소설 『모르부스 키타하라』는 이같은 동기에서 썼지요.”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게 됐습니다.

“처음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홈페이지에 실린 다른 세 분의 후보 작가들을 보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세 분 모두 다 저의 히어로였기 때문이죠. 이분들의 작품들을 직접 읽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만난 분도 있어서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죠. 이 상을 주셔서 굉장히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두 가지가 필요한데요. 첫 번째는 작가의 목소리가 필요하고, 두 번째는 그 목소리를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쓴 소설에 동쪽으로 8000km 넘게 떨어진 여러분들이 귀를 열고 들어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마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단의 ‘시간의 구축에 대해서 저항하는 문학’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소설쓰기 방법이 궁금합니다.

“수십 년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도 했는데요. 제가 글을 쓸 때는, 여행을 다니면서도 개인에 대해 탐구를 하지만, 항상 인간 개개인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자신의 행복과 불행을 어떻게 찾아나가야 하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왜 살고자 하는가에 집중해서 ‘시간에 저항했다’라고 표현을 하신 것 같습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도 탐구를 많이 했고요. 왜냐하면 저에 대해서 먼저 탐구가 되어야 독자들에게 전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문학적인 환경은 많이 달라지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다른 것들을 수용하되 그것을 현실과 동시에 허구와 연결시켜서 쓰는 방식을 계속할 것입니다.”

―위기와 전환의 시대, 문학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문학과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내가 쓰던 언어와 나의 삶의 밖이 어떤지를 상상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다른 환경과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고민을 가진 타자들, 다른 환경과 삶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우리가 꾀할 수 있는 효과는 바로 타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지요. 우리가 뉴스나 역사를 보면 알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정확히 모두 느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북한 사이에 38선이 그어져 있고 전쟁이 있었다는 역사가 있고,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이 400만 명이 넘고, 그러한 결과가 현재까지 이어져 있지요. 그런데 저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 안에 담긴 전쟁 이야기를 읽고서 정치 군사적인 대치 상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그 사람들의 인생과 현실은 어떨까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등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데요) 안타까운 상황에서 문학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이나 자신의 집이 전부 무너진 사람들의 사진을 봤을 때 우리의 마음이 안타깝고 아프게 하죠. 이들의 고통을 느끼고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서울에 대한 인상은 어떤지요.

“서울의 놀라운 점은 한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면서도 고층 건물들이 스카이라인까지 이뤄 매우 드라마틱했습니다. 제가 쓴 소설에는 없던 풍경이죠. 수백 년 전의 시간과 현재, 미래의 시간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 깊고요. 특히 미래적인 것에서 한 발 나와 도로 하나를 건너면 절이 있는데, 절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갈망하는지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매우 인상 깊었어요. 거리 하나를 두고서 다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도 위대한 경험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시간 사이를 다녀야 하는 사람입니다. 서울은 그런 점에서 저의 글쓰기 상상력을 증대시킬 수 있고, 또다시 제 소설에서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과학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키와 긴 콧수염이 인상적이던 란스마이어는 이날 간담회 내내 진지한 모습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때론 자신의 작품을 예로 보여주거나, 때론 우리가 보지 못한 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클릭 몇 번으로 비행기 편만 해결된다면 적도나 극지 여행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얼마나 안이하고 환상인지도. 그러니까 차분해 보이는 저 북극이나 남극, 바다를 몸으로 직접 부딪친다면 거기에는 수천, 수만 년 간 인류가 부딪치고 고민해온 놀라운 모험과 강렬한 기억과 끔찍한 고통과 겪고 싶지 않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우리의 항공로는 여행 시간을 말도 안될 만큼 단축시키긴 했지만 거리를 단축시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어마어마한 것이다. 항공로는 단지 하나의 선일 뿐이고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일지 말자. 우리는 외면상, 단지 걷거나 달리는 사람일 뿐이니까.”(10쪽)

글·사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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