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노멀-청춘들이 마주하는 일상의 공포[시네프리뷰]
2023. 11. 8. 07:11
TV에선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연쇄살인마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때 울리는 초인종. 화재경보기 점검을 나왔다는 아저씨. 훅 들어와 호구조사를 한다. 여성은 식칼을 챙긴다. 과연 이 무례한 점검원은 연쇄살인마였을까.
제목 뉴 노멀(New Normal)
제작연도 2021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13분
장르 스릴러
각본/감독 정범식
출연 최지우, 이유미, 최민호, 표지훈, 하다인, 정동원
개봉 2023년 11월 8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언파스튜디오, 어몽필름
제공 로드원, ㈜바이포엠스튜디오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가끔,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마다 검색해 다시 보곤 한다. 정범식 감독의 데뷔작 <기담>(2007)의 엄마귀신 장면. 그의 두 번째 영화인 <곤지암>(2018)도 마찬가지다. <기담>의 엄마귀신과 마찬가지로 곤지암 정신병원 체험단 일원이었던 지현의 귀신들린 얼굴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인터넷 밈으로 유명하다.
<곤지암>에 이은 정 감독의 차기작 소식을 들은 건 2021년께였다. 당시 언론을 통해 발표된 영화의 제목은 <소름>이었다. 이미 같은 제목의 2001년 영화(윤종찬 감독)가 있는데 괜찮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그 뒤 소식은 잠잠했다. 당시 정 감독의 차기작 <소름>에 대한 소개는 배우 최지우씨의 영화 복귀작이며 카카오TV의 오리지널 호러 극영화라는 것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 제목은 <뉴 노멀>로 바뀌었다. 개봉이 미뤄진 것도, 제목이 바뀐 것도 아마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과 관련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영화의 타임라인은 앞뒤를 오간다. 둘째 날로 시작해 셋째 날로 가기도 하고, 첫째 날 벌어진 사건을 담기도 한다. 아파트에 홀로 지내는 여성(최지우 분). TV에는 여성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연쇄살인마가 날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화재경보기 점검을 나왔다는 아저씨(이문식 분). 이 아저씨, 무례하다.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소식에 불안한데, 훅 들어와 호구조사를 한다. 여성은 옷장에 숨겨뒀던 식칼을 챙긴다.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여성이 움직인다. 과연 그 무례한 점검원은 혼자 사는 여성만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마였을까.
영화제목을 바꿔 개봉한 이유
지난 10월 27일 열린 기자간담회 펼침막엔 영화제목 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늘, 당신의 공포는 일상이 된다.” 그러니까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상 속에서 흔히 접할 만한 사건들에서 벌어지는 난데없는 공포다. 버스를 기다리는 중학생(정동원 분). 휠체어 바퀴가 걸려 곤혹스러워하는 할머니를 본 중학생은 돕기로 결심한다. 마침 ‘남을 돕는 게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냐’고 한마디 했다가 친구들에게 면박을 당한 참이다. 강아지를 주겠다고 유혹한 할머니가 중학생을 이끄는 곳은 어느 낡은 건물. 뭔가 위험하다고 느낀 중학생이 도망치려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험상궂은 사람들이 그를 뒤쫓는다. 그런데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선 건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옆자리에 헤드셋을 끼고 앉아 있던 청년이다. 그러니까 휠체어 탄 할머니나 버스정류장 옆자리 청년 모두 이 학생에게 해코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작업을 쳤던 것이다. 비슷한 형식의 괴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노인을 도와주다가 뒤따르던 봉고차에 납치될 뻔했다 따위의 공포경험담 말이다.
인물로 연결된 에피소드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예컨대 위 중학생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은 나중에 이웃집 여성에게 반한 백수청년(표지훈 분) 이야기에서 거리에 앉아 있는 것으로 다시 등장한다. 첫 에피소드에 등장한 점검원은 다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하다인 분)의 진상 갑질 손님으로 등장한다(그런데 첫 에피소드의 점검원 역을 맡은 배우 이문식씨가 코믹연기로 이미 널리 알려진 배우라서 쉽게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게임 속 음성 채팅창에서 만난 백수청년에게 이웃집 여인을 향해 적극 대시하라고 다그친다. 사실 영화의 절정부에서 이 느슨하게 연결된 이야기가 폭발하면서 하나로 모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인물로 연결된 영화의 에피소드들은 그저 나열될 뿐이었다. 꽤 난해하고(<기담>) 나름의 치밀한 이야기 구조를 지녔던(<곤지암>) 정 감독 작품답지 않은 연출이다. 그냥 주어진 예산에 맞춰 트렌디하게 찍은 저예산 독립 스릴러물을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화의 엔딩장면엔 등장인물이 모두 다 홀로 각자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편집돼 있는데-이 에필로그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주제의식을 담고 있다-감독의 진짜 재능은 장르영화라기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군상에 대한 공감과 묘사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귀신들은 그때 무슨 말을 읊조린 걸까
귀신들린 지현이 빠르게 내뱉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감독의 전작 <곤지암>을 볼 때마다 궁금한 대목이었다. 교포여성 샬럿과 한 조를 이룬 지현은 곤지암 정신병원 밖 베이스캠프를 찾지만 끝내 도달할 수 없었다. 나무에 걸린 속옷 등을 보고 겁을 먹은 샬럿이 지현을 부르지만, 지현은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샬럿이 다가가 얼굴을 보니 이미 지현은 귀신이 들린 상태. 찾아보니 영화 개봉 직후 관객 순회인사에서 ‘그때 무슨 말을 한 거냐’는 질문을 받고 지현 역을 맡은 배우 박지현씨는 “402호 사람들이…”라는 말을 빠르게 되풀이한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역시 비슷하게 인터넷에서 거의 전설이 된 <기담>의 아사코 엄마귀신(사진)과 관련된 후일담은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소개돼 알려진 바 있다. 정범식 감독에 따르면 원래 각본상에는 “엄마: (방언을 읊조린다)”라고만 써놨었다. 그걸 두고 엄마 역을 맡은 배우 박지아씨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해당 장면을 찍었으며, 리허설 없이 원테이크만으로 완성한 시퀀스라고 한다.
엄마귀신은 그때 무슨 말을 했을까. 방송에 출연한 정범식 감독에 따르면 후시녹음을 대비해 스크립터에게 해당 대목을 발췌하라고 시켰는데 그 스크립터가 정직하게도(!) 들리는 대로 “꽥.뀝.삡.짹..…”라고 써왔다고 한다. 뭐 안 본 분들도 있을 텐데 궁금하면 유튜브 같은 데 들어가 ‘기담 엄마귀신’으로 검색해보길.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참고로, 정 감독은 찍는 영화마다 전 세계 인터넷에서 깜짝 놀라게 하는 ‘K밈’을 내놓았던 만큼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의 등장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앞으로 볼 사람도 있으니 구체적인 언급은 안 하겠다. 힌트를 준다면 딱 한 컷, 그런 장면이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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