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을 부탁해’…클래식 공연장 짓는 대기업들
대기업들이 앞다퉈 공연장을 짓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신세계,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앞장섰다. 앞으로 몇년 이내에 서울 강북에 3곳, 강남에 1곳의 전문 공연장이 새로 들어설 전망이다. 다만, 일부 공연장은 설계 변경 등으로 착공이 지연되고 있고, 신세계의 경우 주로 기업 내부용으로 활용할 계획이어서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다.
신세계그룹이 서울 중구 장충동에 마련한 공연장 ‘트리니티홀’은 지난달부터 내부 임직원 대상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리사이틀에 이어 오는 28일 유키 구라모토, 다음달 22일 필하모닉스 공연 등을 잡아놨다. 경동교회 인근 신세계 연수원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트리니티홀은 450석 규모다. 가로 너비가 좁고 세로 길이가 긴 직사각형 모양의 ‘슈박스 공연장’이 음향이 좋다는 게 정설인데, 트리니티홀이 이런 형태다. 객석 의자를 접어 바닥에 밀어 넣을 수 있는 구조여서 다양한 무대 활용이 가능하다. 이곳을 둘러본 톤마이스터 최진(50) 음악감독은 “클래식 전문 공연장을 기본으로 하고, 다른 공연도 가능하도록 설계해 음향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서울 서소문 빌딩을 재건축하고 있는데, 이 건물 5~8층에 호암아트홀의 맥을 잇는 공연장이 들어선다. 두동의 건물을 공연장이 공중에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기존 호암아트홀(643석)보다 객석이 늘어난 1000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오는 2026~2027년께 완공 예정이다.
현대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터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에 공연장을 건립하는 계획을 오래전에 발표했다. 2016년 내놓은 방안은 600석·1800석 규모의 공연장 두개였다. 원래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추진했지만 논의 끝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설계 변경 여부와 무관하게 공연장 계획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서울 종로구 수송동 사옥을 공연장을 갖춘 건물로 재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상 2~5층에 1004석 규모의 클래식 전문 공연장을 만들겠다는 방안이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서울시와 협의가 늦어지고 있는데, 규모와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공연장을 짓는다는 계획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롯데그룹은 2016년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개관해 운영 중이다. 2000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에 대형 파이프 오르간까지 갖췄다. 엘지(LG)는 지난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1335석 규모의 새 엘지아트센터를 건립했다.
대기업들이 클래식 공연장을 짓는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클래식 공연에서 돈을 벌기는 어려워 수익성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롯데문화재단이 건물을 소유한 롯데물산에 내는 임대료만 연간 100억원에 이른다”며 “대관료로 이를 충당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래식 공연장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입주 건물과 공간의 가치도 올려준다. 잠실 일대 롯데호텔과 쇼핑센터는 롯데콘서트홀을 품으면서 고급 복합문화센터 이미지를 구축했다. 주요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문화마케팅 차원에서도 공연장은 효율적 수단이다. 사내 임직원에 대한 문화 복지 측면도 있다. 공연장을 짓고 있는 기업들은 과거에 공연장과 공연단체를 후원한 경험이 축적돼 있다. 신세계는 서울 예술의전당, 현대차와 코리안리는 서울시향을 후원했다.
기업주 개인의 공연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도쿄 산토리홀을 자주 다니며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롯데콘서트홀 객석에서도 가끔 신 회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경우 아내 한지희(43)씨가 플루트 연주자다. 올해 초엔 아내가 멤버로 있는 실내악 앙상블 ‘파체’ 공연을 관람하고 인스타그램에 ‘마누라님 연주회 다녀옴’이란 문구와 사진들을 올리기도 했다. 신세계가 지은 장충동 트리니티홀은 실내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규모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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