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규제 연구? 세금이라도 아끼시라

한겨레 2023. 11.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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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앞줄 오른쪽 셋째)이 지난 9월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짜뉴스 근절 입법청원 긴급 공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손을 맞잡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세상읽기] 김준일ㅣ뉴스톱 대표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선동이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말하니 온 부처가 나서 가짜뉴스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난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9월14일 ‘가짜뉴스 실태와 대응 방안―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사례를 중심으로’ 정책연구 수행기관 공모를 시작했다. 그런데 방통위 산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8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 출장을 보내 가짜뉴스 규제 현황을 조사한 바 있다. 중복 사업이다.

허위정보(가짜뉴스) 규제 해외 사례는 굳이 연구 공모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한국에 소개되어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가짜뉴스 현황과 문제점’ 보고서(2017년), ‘해외 인터넷플랫폼의 유해콘텐츠와 허위정보 대응방안’ 보고서(2019년), ‘온라인 허위정보와 뉴스미디어’ 보고서(2020년), ‘유럽의 가짜뉴스 대응 정책’ 미디어정책 리포트(2023년 2호) 그리고 월간지 ‘신문과 방송’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보고서들 어디를 봐도 정부가 가짜뉴스를 판별하거나 가짜뉴스를 빌미로 언론사를 직접 규제하는 일은 없다. 독일의 경우 ‘네트워크 집행법’이 가짜뉴스에 최대 5천만유로(약 700억원)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한국에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네트워크 집행법은 혐오표현과 아동포르노 등 불법 콘텐츠에 대한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업자의 감시·감독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고, ‘독일 법·정보학회’(DGRI)도 유럽법과 독일법, 국민법 정신을 위반하는 악법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정보조작대처법이 선거 전 3개월 동안 온라인 플랫폼에 허위정보를 게시하지 못하도록 법원이 강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정부, 선거 후보, 정당, 시민단체는 선거기간에 판사에게 허위정보 관련 조치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판사는 48시간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판단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법원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도 이 법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허위정보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허위인지 아닌지를 판사가 어떻게 판단할지가 쟁점이 되었다. 그래서 법 제정 이후 실제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한 적은 없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올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시행하고 구글, 페이스북, 틱톡 등 유럽 내 이용자가 월 4500만명 이상인 19개 서비스에 불법 콘텐츠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인종이나 성적 취향을 기반으로 한 광고는 금지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합성 영상이나 이미지의 경우 제작 과정과 출처를 표시해야 한다. 규정을 위반하면 글로벌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언론사에 대한 가짜뉴스 콘텐츠 심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 방통위가 벤치마킹한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인터넷 심의규제 자체가 없다. 그 어느 나라보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허위정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는 많다.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패한 2020년 대선 때 개표조작 의혹을 제기한 폭스뉴스를 상대로 개표기 업체인 도미니언이 거액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올해 4월 폭스뉴스가 도미니언 쪽에 약 1조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게 대표적이다.

이처럼 해외 사례를 아무리 살펴봐도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규제기관이 가짜뉴스가 뭔지 판별하고 언론사를 규제하겠다고 나선 건 한국 정부가 유일하다. 불편한 언론, 감시하는 언론을 겁줘 위축시키는 것이 정부의 목표로 보인다. 방심위는 법적 근거도 부족한 인터넷언론 가짜뉴스 신속심의 제도를 최근 도입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가짜뉴스 유포 때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위원장은 8월 말 취임 일성으로 공영방송이 가짜뉴스 확산에 책임이 있다며 “무소불위 공영방송을 개혁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차피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다. 올해 세수 펑크만 59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연구 공모 취소하고 쓸데없는 출장도 가지 마라. 차라리 세금이라도 아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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