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어도 되는데, 밥은 꼭 챙겨 먹어”
아침 9~10시쯤에 일어난다. 오전에는 책을 읽고 점심 무렵부터 글을 쓴다. 오후 7시, 함께 사는 ‘짝꿍’이 퇴근하면 같이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고양이 두 마리와 시간을 보낸다. 요즘 〈스트릿 우먼 파이터 2〉에 빠져 있지만, 늦어도 새벽 1시까지는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한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안예슬 작가(33)에게는 이조차 ‘전보다 나아진’ 상태다. “아직도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회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누워 있기도 해요. 그래도 그런 날이 훨씬 줄었고,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작년보다 나아졌어요.”
안예슬 작가는 고립 청년이었다. ‘고립 청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온종일 집에서 게임만 하는 젊은 남성의 뒷모습’을 떠올리지만, 그는 1990년생 여성이다. 실제로 2022년 12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정서적·물리적 고립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된 경우)과 은둔(외출 없이 6개월 이상 지내고 한 달 이내 직업·구직 활동이 없는 경우) 상태에 있는 서울시 거주 청년 약 12만9000명 중 여성이 51.4%, 남성이 48.6%였다. 안예슬 작가는 “거의 모든 연구에서 남녀 비율은 반반으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고립’ ‘은둔’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애초에 ‘일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남성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 역시 남성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지원 정책 대부분도 남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사자인 안예슬 작가가 쓴 151쪽짜리 석사학위 논문 ‘여성 청년의 사회적 고립 경험에 대한 젠더 연구(2023)’는 여성 고립 청년에 초점을 맞춘, 사실상 국내 첫 연구다. 여성 고립 청년 열 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물이다. 최근 낸 책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이매진)에는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사실 제가 고립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맞나 하는 고민도 많이 했어요. 제가 만난 고립 청년들보다 가진 게 많았거든요.” 가족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긴 하지만 빚을 대신 갚아야 했거나 가정폭력을 겪지는 않았다.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에서는 실천여성학을 전공했다. 심지어 서울시의 한 민간 위탁기관에서 고립 청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실무자로 수년간 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분명 고립 청년이었다. 그래서 더욱 ‘여성 고립 청년’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고립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연구자이기도 하고 실무자이기도 했던 자신이 ‘여기 이들이 있다’고 말하는 건 책무에 가깝게 느껴졌다. “저처럼 가족, 학위, 정규직 경험이 있는 사람도 고립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없는 사람들은 훨씬 더 큰 고립감을 느낄 수 있고, 그만큼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거든요.”
가족·직장 있어도 고립될 수 있어
그에게 첫 번째 고립 기간이 찾아온 건 2011년 겨울,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였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자 점차 외부와 관계가 끊겼다. 집에만 누워 있는 딸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억지로 헬스장에 등록시키기도 했다. 가족과 대화를 하고 덕분에 밥을 챙겨 먹었지만, 그렇다고 고립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그가 나중에 만났던 여성 고립 청년 열 명 중 여섯 명이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가족과 일상적인 말 몇 마디를 나누지만 진정으로 소통하는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안예슬 작가는 책에서 “냉장고에 꺼내 먹을 음식이 있다는 점에서 가족이나 동거인의 유무가 고립의 모습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두 번째 고립 기간은 지난해였다. 고립 청년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다 퇴사한 직후였다. 대학원에 다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집에서 독립해 나온 이후였기 때문에 말 그대로 온종일 누워 지냈다. 일주일 중 하루만 “간신히 몸만 끄집어내서”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고 그마저도 자주 빠졌다. “어느 날인가 연구보고서를 보고 있었어요. 인터뷰 없이 통계수치만 있는 보고서였는데도 이 사람들이 지금 어떤 과정 속에 있는지 너무 잘 알겠는 거예요. ‘어, 근데 이걸 내가 왜 알지?’ 싶더라고요.” 고독함과 적막감을 이기려고 밥을 먹을 때도, 양치를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하루 종일 유튜브를 틀어놓는 ‘영상 중독’에 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들이 곧 나구나.’
‘고립’의 정의는 다양하다. 주로 ‘3개월 이상 사회 참여를 하지 않거나 1년 넘게 미취업인 상태’를 고립으로 본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안예슬씨가 만난 여성 고립 청년 중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이도 있었고, 애인을 사귀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직장에 다니기도 했다. 나이, 학력, 지지 관계,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 직업적 안정성과 소득 모두 다양했다. 여성은 특히 직장을 잃거나 가족 내에서 가부장적인 억압에 짓눌릴 때 고립감을 느낄 가능성이 컸다. 안예슬 작가의 고립 기간도 모두 일이 없고 성취할 목표를 잃었을 때였다.
스스로 고립 기간이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첫 번째 기간과 달리 그는 이번에는 자신을 ‘고립 청년’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낙인을 찍는 것 같잖아요. 내심 자신이 고립 청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회피하다 보니까 더 그런 상태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섭식장애도 마찬가지였다. ‘안 먹는다고 나쁠 거 없지, 오히려 살 빠지니까 괜찮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남성 고립 청년이라면 아마 하지 않았을 생각이기도 했다.
식욕부진, 상실감과 무력감 같은 특성은 우울증의 대표적 증상이기도 하다. “정신건강을 연구하는 분들을 만나면 다 그렇게 이야기하세요. ‘이건 우울증이다’라고. 고립으로 접근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안정적 일자리를 갖거나 유지하지 못할 확률이 더 높고, 그 공백 시기에 고립을 겪을 위험이 크잖아요. 이런 구조적 문제는 빼놓고 개인의 우울증만 치료하면 해결될까요?” 안예슬 작가는 고립된 상태에서 우울증까지 겹친다면 당연히 의료적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젊은 여성이 고립감을 느끼는 근본적인 원인에 주목해달라고 강조했다.
“기관에서 일하면서 고립 청년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해봤지만 ‘이게 답이다’ 싶은 건 없었어요. 밀키트 배급처럼 물론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있지만 애초에 여성이 왜 고립되는지부터 관심을 갖는 정책 자체가 없어요. 요즘에는 정부가 청년정책을 하겠다면서 여성의 존재를 지워가고 있는데 앞뒤가 안 맞잖아요. 청년인데 여성인 사람은 어떡해요?” 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이번 정부가 내 정체성에 관심이 없다면 애초에 살펴볼 제도 자체가 없다. 그렇게 매번 사각지대가 만들어진다.’
여전히 고립 청년들의 이야기를 ‘배부른 소리’라고 일축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예슬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을 굳이 이해시키거나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저 스스로도 ‘노력하면 되는데 왜 안 해?’ 하는 자책을 많이 했어요. 어쩌면 그 누구보다 더요. 그런데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당신의 배경과 경험은 저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한다고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혼자 오래 누워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일단 버텼으면 좋겠어요. 버티다 보면 뭔가를 부여잡게 된다고 생각해요. 나아질 거라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저 안예슬이라는 한 사람이, 당신이 나아지기를 바랄 뿐이에요.”
머뭇거리며 한 문장씩 진심을 다해 말하던 그는 다급하게 덧붙였다. “아, 이 얘기는 해야겠어요. 밥이라도 먹어라 친구들아. 누워 있어도 되는데, 밥은 꼭 챙겨 먹어.”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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