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총기 사고에…보수 우위 美 대법원 ‘총기 규제’로 선회하나
“의외의 판결 가능성, 파급력 상당할 듯”
미국 연방 대법원이 가정 폭력범에게 총기 소지를 금지한 연방법이 위헌(違憲)인지 여부에 대한 심리에 들어간 가운데, 보수 성향 법관들이 ‘총기 규제’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그간 총기 규제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던 보수 우위 대법원이 통상적 이념 구도를 탈피해 조건부 총기 규제 쪽으로 판결 성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9명 중 6명(대법원장 포함)인 보수 절대 우위의 구도에서 이 같은 의외의 판결이 나올 경우 파급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대법원은 이날 여자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른 뒤 총기 소지 금지 명령을 받은 이후에도 총기를 사용한 혐의로 징역 6년형을 받은 자키 라히미 사건에 대한 구두 변론을 열었다. 텍사스주 케너데일에 거주하는 라히미는 2020년 2월 전 여자 친구에게 폭력을 휘두른 이후 ‘총기 소지 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그해 12월과 2021년 1월 5번에 걸쳐 사격을 한 혐의로 기소됐었다.
지난 2월 제5 연방 항소법원은 가정 폭력으로 금지 명령 중인 사람에 대해 총기 소지를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작년 6월 대법원이 공공 장소에서 총기 휴대를 제한하는 뉴욕주의 총기규제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총기 휴대 및 소지의 권리를 규정한 ‘수정 헌법 2조’ 등을 근거로 들면서 “총기 규제는 이 나라의 역사적인 전통과 모순되지 않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었다. 대법원 결정 이후 미 전역에서 각 주(州)의 총기 규제가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날 보수 성향 판사들은 가정 폭력으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사람들이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고 NYT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임명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이날 “가정 폭력의 위험을 초래하는 사람은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다. 보수 대법관 중에서도 강경파로 알려진 닐 고서치 대법관 또한 이날 “(가정 폭력범이 총기를 소지할 경우 유발될 수 있는) 위협 가능성이 있을만 하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때 임명됐던 브랫 캐버노 대법관도 가정 폭력범들이 총기 구매를 시도했다가 연방 신원 조회 프로그램에 따라 7만5000번 넘게 거부됐다는 정부 통계를 언급하면서 가정 폭력범이 총기를 소유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고 NYT는 전했다. 다만 보수 성향 새뮤얼 앨리토,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총기 규제 연방법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대법원의 이번 총기 규제 심리는 미 전역에서 총기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 메인주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22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NYT는 “작년 집밖에서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폭넓게 인정했던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통해 (혼란스러운) 총기 소지·권리를 명확히 하게 될 것”이라며 “단순 가정 내 폭력 수준을 넘는 판결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 연방 대법관은 통상 어느 당 행정부에서 임명됐느냐에 따라 보수(공화당) 또는 진보(민주당)로 구분된다. 낙태나 총기 소유 등 미국인의 일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대법원은 대체로 이념 지형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 기존 이념 구도를 탈피해,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기반해 판결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6월 나온 ‘인디언 어린이 복지법(ICWA)’ 관련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인 1978년 제정된 이 법은 원주민 혈통 보존을 위해 인디언 어린이의 백인 가정 입양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바이든 행정부도 이 법의 존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보수 대법관 4명이 진보 대법관 3명과 의견을 같이하면서 압도적(7대2)인 존치 결정이 났다. 대법원이 루이지애나주 등 보수 성향 남부 주를 상대로 “현재 선거구 획정이 흑인에게 불리하니 조정하라”는 판결을 잇따라 내린 것도 비슷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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