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괴상한 괴력…'괴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괴인'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쉼 없이 통념을 깬다. 관객 대부분에겐 무의식 중에 학습된 스토리가 있다. 익숙한 설정 몇 가지가 모이면 으레 이야기가 나아갈 방향이 예상되기 마련이다. 클리셰 말이다. 그저 그런 영화들은 이런 공식을 답습함으로써 관객을 심드렁하게 한다. 그런데 '괴인'은 관객이 움켜쥐려는 순간 매번 그 손길을 유유히 빠져나가며 러닝 타임 136분을 가뿐히 버텨낸다.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길고 주류 영화라고 해도 위험부담이 적지 않은 상영 시간인데도 '괴인'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슬아슬함으로, 알 것 같았는데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괴인'에는 괴상한 괴력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이정홍 감독의 '괴인'이 진부함을 깨부수는 충격적인 사건을 줄지어 보여줄 것만 같지만, 사실 이 영화엔 아무 일도 없다. 당연히 줄거리랄 것도 없다. 이 작품이 그려가는 건 목수 일을 하는 기홍의 일상. 피아노 학원 인테리어 일을 끝내고, 이사를 가서 도시 외곽 주택에 세들어 살게 된 뒤, 주인집 남자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종종 새로운 일을 구하며, 결혼한 동생 집에 들르기도 하고, 또 술을 마시는 모습을 담아내는 게 '괴인'의 전부다. 이 감독은 특기할 만한 사건을 펼쳐놓는 대신 특별할 게 없는 일상 속에 똬리를 틀고 앉은 관계에 골몰한다. 피아노 학원 원장과, 함께 일하는 친구와, 주인집 부부와, 차를 망가뜨린 어느 여성 등과 기홍 사이의 거리를 포착하려 한다.
인간 관계라는 면에서 본다면 '괴인'엔 모든 일이 있다. 로맨스를 꿈꿔봤으나 결국 엇나간 남녀 관계가 있고, 돈과 일거리 등을 두고 삐끗한 친구 관계가 있으며, 도무지 마음이 잘 맞지 않는 가족 관계도 있다. 또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못하고 오히려 멀어져버린 새로운 관계도 있다. 이 이상한 영화는 이처럼 온전히 소통하지 못 하는 무수한 관계를 훑어 가면서 우리가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 없는 긴장감을 응시한다. 이때 기홍은 자주 변명을 한다. 종종 한숨을 내쉬고, 어떤 순간엔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버럭 화를 냈다가도 사과하고, 난감해하다가도 결심을 한다. 이때 '괴인'은 기홍을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겨냥하는 건 기홍을 보고 있는 관객 당신이다.
'괴인'은 에피소드들을 출발은 시키되 도착하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엉뚱한 곳을 경유하게 해 텐션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반복해서 관객에게서 멀어지고 낯설어지려 한다. 일례로 기홍과 기홍과 함께 일하는 친구 사이에서 미묘하게 어긋난 관계는 완전히 틀어지지도 다시 봉합되지 않고 어긋난 상태 그대로 남겨져 찝찝함을 유지한다. 기홍의 차가 망가진 사건은 범인이 잡히면서 일단락 되는 듯하지만, 범인 소녀가 기홍의 일상에 틈입해 그와 전혀 무관하던 관계를 흩트려놓는다. 이런 식으로 '괴인'은 유사한 스토리텔링을 반복·변주하며 이 작품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삶의 감각을 관객 머리와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
연기를 일로 하는 전문 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기홍은 이름이 박기홍이고 실제로 하는 일도 목수인 이 감독의 친구가 연기했고, 집주인 정환 역시 이 작품 전까지는 배우가 아닌 요리사였다. 이들의 정제되지 않은 연기는 관계 속 공포심이라는 '괴인'의 주요 테마에 현실감을 부여해 실감하게 한다. 이 감독은 "원래 전문 배우를 캐스팅 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비전문 배우로 선회하게 됐다"고 했다. 이처럼 한계와 우연은 어떤 순간엔 창작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이 비주류 영화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유재선의 '잠', 김창훈의 '화란', 조현철의 '너와 나'와 함께 이정홍의 '괴인'은 올해 한국영화계가 이뤄낸 성취인 게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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