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달큰한 호박, 밥에 쓱 비벼 한입…‘추억의 맛’ 여기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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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랑한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바글바글 끓인 소박한 찌개 한 뚝배기가 생각난다.
호박지찌개는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알뜰히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상 위에 반찬이 한가득 차려지고 가운데 호박지찌개가 자리 잡는다.
김치로 만든 찌개라지만 달달한 호박 맛이 많이 나 맛은 된장찌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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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에다 김장하고 남은 채소 더해 만든 김치 ‘호박지’
뚝배기에 들기름 달달 볶아 쌀뜨물 자작하게 붓고 끓여내
된장찌개 가까운 맛…한번 먹으면 못 잊고 멀리서도 찾아와
쌀랑한 추위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바글바글 끓인 소박한 찌개 한 뚝배기가 생각난다.
충남 서산 토박이에게 호박지찌개는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솔푸드다. 한술 뜨자마자 혀끝에서부터 아련한 추억이 피어오르니 몸도 마음도 참 따뜻해지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호박지찌개는 서산을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 만들어 먹는 김치인 ‘호박지’로 끓인 찌개다. 특히 김장철에 호박지를 만드는 집이 많다. 김장을 하고 난 후 남은 자투리 채소를 더해 만들기 때문이다. 무청을 듬뿍 넣은 게국지찌개나 우럭젓국찌개 역시 부산물로 만든 겨울나기용 찌개다. 호박지찌개는 재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알뜰히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호박지는 배추김치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박하게 숭덩숭덩 썬 늙은 호박과 무·배추·무청을 버무린 다음 고춧가루·파·마늘·생강으로 양념하고 새우젓이나 황석어젓으로 간을 맞춘다.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집에서는 젓갈 대신 간장게장을 넣기도 한다. 호박에서도 수분이 충분히 나오고 단맛이 많이 나기 때문에 다른 채소를 추가로 넣을 필요는 없다.
쟁여둔 호박지로 찌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뚝배기에 호박지 한 국자를 넣고 들기름에 달달 볶는다. 건더기가 간신히 잠길 정도로 쌀뜨물을 자작하게 붓고 10∼15분 끓여주면 끝이다. 신경 쓸 것은 딱 하나, 시간이다. 너무 오래 불 위에 올려두면 호박이 푹 익어버리니 포슬포슬 알맞게 익히는 게 중요하다.
친숙하게 먹던 집밥 메뉴라서 호박지찌개만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은 찾기 어렵다. 주인장 손맛 좋은 백반집에서 나오는 게 전부다. 서산시 동문동 보리밥집 ‘억보리’ 메뉴판에도 호박지찌개는 없다. 꽁보리밥 정식을 시키면 따라 나오는데 특히 이 맛을 못 잊어 멀리서도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다.
상 위에 반찬이 한가득 차려지고 가운데 호박지찌개가 자리 잡는다. 샛노란 호박 덩이 한두개를 떠서 밥 위에 올리고 쓱쓱 비벼 맛본다. 밥알 사이사이로 스며든 국물에서 짭조름한 젓갈향이 확 풍겨온다. 김치로 만든 찌개라지만 달달한 호박 맛이 많이 나 맛은 된장찌개에 가깝다. 국물을 잔뜩 머금은 무청을 밥 위에 올려 먹어도 맛있다.
단골손님들은 호박지찌개를 먹으며 어렸을 때 기억을 한보따리씩 풀어놓는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이곳을 찾아 점심을 먹는다는 한 손님이 “화롯불 위에 호박지찌개를 올려두고 간단하게 저녁상을 차려 먹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옆 테이블에서 “결혼하고 나서 남편한테 호박지를 난생처음 들어봤다”며 “시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워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됐다”고 답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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