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달리의 곤충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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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된 줄 알았던 빈대가 올가을 전국에 다시 출현했다.
빈대는 사람 피를 빨아 지독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극혐오 곤충 중 하나다.
달리는 특히 곤충공포증이 심했다.
달리의 곤충공포증은 어린 시절 사촌누이가 달리의 옷깃 속에 메뚜기를 집어넣고 눌러 으스러뜨리는 장난을 친 그날부터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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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멸된 줄 알았던 빈대가 올가을 전국에 다시 출현했다. 빈대는 사람 피를 빨아 지독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극혐오 곤충 중 하나다. 벌레를 보기만 해도 소스라치고 그것이 내 몸 구석구석을 기어다닌다는 상상만으로도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케이트 서머스케일의 책 ‘공포와 광기에 관한 사전’에서는 무언가에 대해 과도하게 두려워 움츠러드는 공포증을 포비아(phobia), 지나치게 열망해 흥분을 멈추지 못하는 광기를 마니아(mania)라고 부른다. 포비아와 마니아가 보이는 반응은 냉탕과 온탕처럼 극과 극인데, 이 둘을 창의력의 원천으로 삼았던 미술가가 있으니 바로 초현실주의자 살바도르 달리(1904~1989년)다.
달리는 특히 곤충공포증이 심했다. 달리는 벼룩이 몸에 기어다니는 듯해 피부가 다 벗겨지도록 긁어대다가 벼룩을 죽이겠다고 자기 등을 날카로운 것으로 마구 베기까지 했다. 물론 벼룩이 몸을 기어다니는 느낌은 그저 착각일 뿐이었다. 달리의 곤충공포증은 어린 시절 사촌누이가 달리의 옷깃 속에 메뚜기를 집어넣고 눌러 으스러뜨리는 장난을 친 그날부터 생겼을 것이다. ‘찍’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끈적한 액체가 목덜미 위로 흘렀고, 그는 온 감각이 마비되는 듯했다. 중년이 돼서도 달리는 그런 끔찍한 느낌을 참느니 차라리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버리겠다고 되뇌곤 했다. 달리는 개미 떼가 동물의 사체에 우글거리며 새까맣게 붙어 있는 걸 보고 기겁한 적도 있었다. 이후 달리의 작품에서 이 개미 떼가 상징적으로 종종 등장했는데 시계가 흐느적거리는 형태로 유명한 그림 ‘기억의 영속성’에도 보인다. 그림 중앙에 눈 감은 화가 자신의 옆모습이 있고, 주변에 자리한 시계들도 태엽이 풀린 것처럼 축 늘어져 있어 잠든 세상의 풍경을 보여준 듯하다.
왼쪽 아래에 있는 주황색 펜던트 시계 위에 개미들이 모여있다. 생물체가 죽으면 그 위로 삽시간에 새까맣게 덮쳐드는 개미 떼다. 달리가 어떤 것 위에 개미 떼를 그려 넣으면 그것은 죽어 있다는 암시인데, 이 그림에서는 박동이 멈춘 죽은 시계 위로 개미 떼가 모여들고 있다.
사실 시계는 배터리를 다 쓰면 자거나 죽겠지만, 시간 자체는 잠들지도 않고 죽는 일도 없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앞에 인간은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올해가 시작된 것이 조금 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11월, 2023년도 이제 한달 남짓 남았다. 시간이 이렇게 우리 몰래 제멋대로 속도를 내고 있을 줄이야. 시간은 벌레와 닮았다. 모기나 바퀴벌레, 그리고 빈대처럼 시간도 낮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사람이 잠들었을 때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도무지 사람이 시간의 속도에 적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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